윤치술 교장산악인과의 대화

[윤치술 칼럼 <7>] 山을 품은 愛國歌

서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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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6 11:26

백두산 천지

1786년 미셀파카르와 작발마가 몽블랑Mont Blanc(4,807m) 정상에 올랐다. 근대 등반의 시작이다. 그 이전에도 양을 치는 목동과 나무와 새를 관찰하는 학자들,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이 피레네산맥과 알프스를 넘었지만 이것은 생활 속의 산이다. 반면정상 등반에 목적을 둔 극기와 도전, 모험, 경쟁과 기록의 개념이 등산Climbing이다. 몽블랑을 전혀 다른 생각으로 오름으로써 인간은 새로운 산을 갖게 되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정조 10년으로 우리의 산은 몸져누운 어머니를 위해 약초를 구하고 늙으신 아버지를 위해 구들을 덥히고자 나무하러 간 ‘정성의 산’이었다. 선비에겐 ‘명상과 탐구의 산’이며, 소리꾼은 득음을 위해 목울대를 폭포에 섞었을 ‘간절함’의 산이었다.

어느 백성이 앞산과 뒷산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 격한 몸짓으로 치댔을까? 그러니까 우리에겐 ‘아등바등’에 홀릭holic하는 산은 없었다. 이기고자 오르는 등산이 아니라 어머니의 품인 듯 자연에 안기는 입산! 이것이 우리 민족이 가치를 둔 산행의 오롯한 모습이다.

이렇듯 판소리의 추임새 같은 산이 코가 솟아 버린 이유 중 하나로 구舊시대의 트로피 같은 히말라야 14봉 등정과 순수 알피니즘을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이용한 몇몇 산악인의 탐욕을 들 수 있다. 일부는 과장된 그들의 영웅담에 미혹되어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에 빠져 버리는 우를 범한다. 산악인 흉내 내기로 인해 산은 힘자랑, 옷 자랑의 난장亂場이 되었고, 이 현상은 치기와 성취, 욕망과 그리움,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이제라도 도전의 산을 접고 자연을 벗 삼는 입산의 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

산이 한국인의 삶과 깊은 관계에 있음을 나는 애국가에서 찾는다. 태극 문양은 대자연의 진리를 표현하고, 애국가는 백두산, 남산, 화려강산 등 산과 자연을 담고 있다. 내가 조사한 바로 ‘산’이 들어간 국가國歌는 드물다. 미국은 “포탄의 붉은 섬광과 창공에서 작렬하는”, 일본의 기미가요きみがよ는 “천황의 시대는 천년이고, 팔천년이고”, 영국은 “오! 신이시여 깨어나 그녀의 적들을~”이며, 중국과 러시아도 결코 산을 노래하지 않는다. 등산의 발상지인 알프스 언저리의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도 그렇다. 스위스만이 1절에 “알프스산맥이 광채로 밝게 빛날~”이 들어간 정도이다. 

우리가 다녔던 학교 교가에도 산은 우뚝하다. 삼천리 금수강산 백두대간에 기대어 살아온 한민족의 정신 세계를 아우르는 중심축이 산이며, 정체성의 적극적 표현이라 하겠다. 산이 많고 히말라야 14봉 완등자가 많아 붙여진 어쭙잖은 산악국가(山岳國家)가 아닌, 백두산 마루터기가 닳도록 자연에서 배우고 즐기는 산악국가(山樂國家)가 되어야 함이 옳다.

아름다운 가을날, 함초롬 젖은 새벽 고샅길을 탐하며 애국가의 산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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