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곤 대장산악인과의 대화

[김미곤 14좌 완등| <2> 분석] 한국 ‘14좌 완등자 6명’ 세계 2위!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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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6 17:10

이탈리아 7명으로 1위… 성과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와 기업 후원 영향

파키스탄 현지시각 7월 9일 오전 8시 21분 한국도로공사 김미곤 대장이 낭가파르바트(8,125m) 정상에 섰다. 이로써 그는 고 박영석, 엄홍길, 한왕용, 김재수, 김창호에 이어 히말라야 8,000m급 14개 고봉을 모두 오른 여섯 번째(캉첸중가 등정 논란이 있는 오은선 대장 제외) 한국인이 됐다. 한 국가에서 6명의 14좌 완등자를 배출한 것은 스페인과 우리나라뿐으로 세계 2위에 해당된다. 현재 가장 많은 완등자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는 이탈리아로 총 7명(이중 국적자 포함)이 14개 거봉을 모두 올랐다.

우리나라의 8,000m 14좌 완등자.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고 박영석, 엄홍길,  김창호, 김미곤, 김재수, 한왕용 대장
우리나라의 8,000m 14좌 완등자.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고 박영석, 엄홍길, 김창호, 김미곤, 김재수, 한왕용 대장

1986년 이탈리아의 라인홀트 메스너Reinhold Messner가 인류 최초로 8,000m 14좌 완등에 성공한 뒤, 36년 동안 수많은 도전자가 그의 뒤를 이었다. 2018년 현재 세계의 14좌 완등자는 김미곤 대장까지 모두 40명이다. 40위는 기록 측면에서 보면 그다지 의미 있는 순위는 아니다. 하지만 한 사람이 14개의 8,000m급 거봉을 모두 등정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공기가 희박한 높은 고도와 변동성 큰 날씨, 위험한 루트 등 극복해야 할 요소가 매우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새로운 루트나 동계 등반, 무산소 등반과 같은 극한 요소까지 더해지면 난이도는 더욱 높아진다. 

한국등산학교 남선우 교장은 “김미곤 대장의 14좌 완등은 대단한 성취인 것은 분명하나, 의미 있는 기록으로 보기는 어렵다”면서, “최근 세계 산악계는 등반사에 남을 만한 새롭고 어려운 등반에 주목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남 교장의 말처럼, 14좌 완등은 개인이나 소속 단체의 입장에서 볼 때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완등자가 늘어나며 점점 희소성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많은 노력과 시간, 비용이 들어가는 등반이지만, 확실히 그 성과에 대한 평가는 예전만 못하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나라를 비롯한 몇몇 국가에서는 14좌 완등을 목표로 도전하는 등반가가 적지 않다.

아시아산악연맹 이인정 회장은 “우리나라에 14좌 완등자가 많은 것은 성과를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한 몫을 했다고 본다”면서, “여기에 아웃도어 기업들의 적극적인 후원까지 더해지며 가시적인 성과를 거둔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실 고산등반가들에게 8,000m 14좌만큼 확실한 명분도 드물다. 우리 사회에 가장 잘 알려진 등반에 대한 이미지가 히말라야 14좌이기 때문이다. 또한 아웃도어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등반대를 후원하는 기업이 늘어난 것도 영향을 미쳤다. 명분과 기업의 후원이 접점을 찾으며 많은 등반대가 히말라야를 오르며 성과를 거뒀다. 시간이 지나며 그런 결과물이 쌓여 14좌 완등자 탄생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2012년 처음으로 8,000m 14좌 완등자를 배출한 일본의 경우 더 이상의 완등 소식은 전해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일본 클라이머들이 등반을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니다. 2009년 ‘타니구치 케이’가 최초의 여성 황금피켈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을 비롯, 많은 일본 등반가들이 고난도 등반을 추구하며 세계 산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8,000m급 등반의 성과는 도드라지지 않는다. 이는 일본 등반가들이 추구하는 방향과 거봉 등반이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라는 평이다.

일본 몽벨의 이사무 다츠노 회장은 몇 년 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인의 가치관과 젊은이들의 흥미가 다양화되면서 등반가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변하고 있다”면서, “소규모로 난이도 높은 원정을 추구하는 스타일이 증가하며, 대규모의 자금조달이 필요치 않아, 일본 등반대의 활동이 크게 눈에 띄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의 젊은 클라이머들은 경제력이 허락하는 한도 안에서 등반을 펼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8,000m급 거봉 등반은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힘든 활동이다. 그러다보니 한 사람이 처음부터 계획을 세워 그대로 추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처음에는 원정대의 막내로 참가해 경험을 쌓으면서 차근차근 목표를 세우고 꿈을 키워나가는 경우가 많다. 김미곤 대장은 어쩌면 그런 케이스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세 번째 14좌 완등자 한왕용씨는 김미곤 대장의 히말라야 도전에 첫 단추를 끼우는 데 일조한 인물이다. 그는 “1998년 마나슬루에서 김미곤씨와 등반했는데, 당시 고소적응이 쉽지 않아 성공하지는 못했다”면서 “이후 20년 동안 꾸준하게 등반해 14좌를 마무리한 것을 보면, 첫 히말라야였던 마나슬루 등반이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1998년 첫 등반 이후 한왕용 대장은 김미곤과 몇 차례 히말라야 원정에 동행했다. 2001년에는 세계 5위봉 마칼루를 함께 오르기도 했다. 2006년 가셔브룸Ⅱ봉 때부터 광주 산악계의 선배 김홍빈 대장의 조력자로 여러 차례 히말라야의 거봉 정상에 섰다. 그렇게 등정 기록이 하나 둘 쌓인 끝에 14개의 거봉을 모두 오를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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