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곤 대장산악인과의 대화

[김미곤 14좌 완등| <1> 의미] 20년 노력의 결실… 김미곤 쾌거 축하!

관리자
  • 616
  • 0
  • 0
2019.03.06 17:09

2,000m 산 없는 국가서 쉽지 않아… 블랙야크 후원·도로공 등산팀도 한몫


김미곤이 14번째로 오른 8,000m 거봉 낭가파르바트.

블랙야크가 후원하는 한국도로공사(사장 이강래) 김미곤 대장이 파키스탄 현지시각 7월 9일 08시 21분 히말라야 8,000m급 고봉 중 하나인 낭가파르바트(8,125m) 정상에 섰다. 이로써 김미곤 대장은 2000년 초오유(8,201m) 등정을 시작으로, 근 20년에 걸쳐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에 성공했다. 이는 히말라야 14좌 완등 기록으로 세계에서 41번째, 국내 7번째(오은선 대장 포함)의 기록이다. 그의 히말라야 14개 거봉 등반기록을 지면을 통해 소개한다._편집자 주

푹푹 찌는 불볕더위 속에 멀리 파키스탄에서 들려온 김미곤의 낭보朗報는 마치 긴 가뭄 끝의 소나기처럼 반갑고 기쁘기 그지없다. 김미곤은 그의 마지막 남은 8,000m봉인 낭가파르바트(8,125m)를 킨스호퍼 루트를 통해 등정에 성공했다. 원정대 이름이 재미있다. ‘2018 낭가파르바트 아시아 평화 원정대’로 김미곤 대장은 타이완 산악인 루충한呂忠翰(35)과 네팔의 오랜 파트너 세누 셰르파Sanu Sherpa(42)와 함께 7월 9일 오전 8시경 낭가파르바트 정상에 섰다.

이 세상에는 해발 8,000m 이상의 높은 산이 14개가 있다. 한 산에 몇 봉우리가 있는 산도 있지만(캉첸중가의 경우 네 봉우리가 8,000m 이상) 독립된 산으로는 모두 14개의 산이고, 가장 높은 봉우리가 그 산의 정상이다. 이 자이언트 고산들은 히말라야산맥에 10개, 카라코룸산맥에 4개가 위치해 있다. 낭가파르바트는 히말라야 서쪽 끝에 있는 거봉으로 일명 ‘악마의 산’으로 불린다.

2,000m 넘는 산이 하나도 없는 우리나라에서 8,000m가 넘는 고산을 단 한번이라도 등정한다는 것은 훈련받은 산악인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14개의 8,000m 봉을 모두 등정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기록이다.

올림픽처럼 단시간에 이루어 내거나, 짧은 기간에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은 더더구나 아니다. 위험천만한 높은 고도의 설·빙벽, 희박한 대기 속에서 혹한, 강풍, 눈보라 속을 뚫고, 수없이 반복되는 뼈를 깎는 고통과 인내, 숱한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피눈물 나는 노력, 그리고 목숨 건 자신과의 처절한 투쟁과 불굴의 도전 정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여기에는 함께 고통을 나눈 가족과 동료 산악인, 현지인 그리고 지원을 아끼지 않은 등산장비 업체, 끝까지 격려를 해준 후원자들의 숨은 공이 지대했음은 물론이다. 또한 히말라야의 여신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이는 한 인간의 능력으로는 결코 불가능했으리라.

김미곤은 전북 남원이 고향이다. 어릴 때부터 뛰놀던 뒷산이 바로 명산 지리산(1,915m). 대학(서영대 94학번)은 광주에서 다녔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등산의 세계에 몰입했고, 1998년 광주전남학생산악연맹의 유럽알프스 3대 북벽(아이거, 그랑조라스, 마터호른) 원정대에 참가해 세 거벽을 모두 올랐다. 이어 바로 전북의 한왕용, 나관주 선배에게 발탁되어 같은해 마나슬루(8,163m) 원정에 참여했다. 첫 히말라야 원정으로 등정에는 실패했다. 2000년 초오유(8,201m) 등정을 시작으로 완등까지 근 20년 인고忍苦의 세월이 필요했다.

2001년 한국도로공사 팀이 시샤팡마 남벽에 신 루트 개척할 때 대원으로 참여했고, 이후 정식으로 한국도로공사에 입사했다. ‘한국도로공사 산악팀’은 고산등반으론 국내 유일의 실업팀인 셈이고, 산악인 김미곤으로선 큰 행운이었다. 2005년 광주, 전남산악연맹 합동대가 표고차 4,500m의 ‘지상최대의 벽’ 낭가파르바트 루팔 벽을 등정할 때도 대원으로 참여했으나 낙빙落氷에 맞아 큰 중상을 입었다. 2년 후인 2007년에는 로체(8,516m)와 에베레스트(8,850m)를 국내 최초로 연속 등정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에겐 실패와 좌절도 적지 않았다. 특히 2016년 낭가파르바트 등반 때는 변덕스런 악천후가 지속되어 파키스탄의 5개 8,000m 산에 몰린 수많은 원정대가 모두 등정에 실패했었다.


2010년 동료 두 명 잃어 가장 힘든 시기

타이완 산악인 루충한과의 만남도 극적인 우연이다. 2015년 가샤브룸 1봉(8,068m) 등반 때다. 한국도로공사 팀은 BC에 있었는데, 먼저 등반 중인 타이완 팀이 7,700m 지점에서 추락사고가 발생하자 김미곤 대장은 셰르파 2명과 구호장비를 올려 이들을 극적으로 구출했다. 무사 귀국한 루충한은 답례로 2015년 김 대장을 타이완에 초청했고, 김 대장은 2016년 낭가파르바트와 이번 원정에 루충한을 대원으로 불렀다. 루충한은 이로써 4개의 8,000m 등정자가 되었다.

고산등반가 김미곤에게 가장 힘들었던 등반은 뜻밖에 2010년 마나슬루 원정이었다고 말한다. 기술적으로나 체력적인 문제가 아닌 정신적 고통으로 그는 등반 중에 윤치원, 박행수 두 동료를 잃었기 때문이다. 이듬해 시신을 찾기 위해 다시 마나슬루로 향하기도 했다.

김미곤의 완등 쾌거로 우리나라는 고 박영석, 엄홍길, 한왕용, 김재수, 김창호에 이어 모두 6명의 8,000m 완등자를 배출하게 됐다. 오은선 역시 여성으로 14개봉 등정자로 등극했지만 캉첸중가 등정시비가 해결되지 못해 안타깝다.

김미곤은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다. 그는 정상이나 기록에 결코 연연하지 않는다. 그냥 등산 자체를 즐긴다. 때문에 그에겐 등반도 캐러밴도 준비과정도 모두 즐거움이다. 그의 산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안전이다.

산악인 김미곤은 앞으로도 일취월장하기 바란다. 그러려면 우선 오늘이 있기까지 도와주신 많은 선후배의 고마움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선배에게 은혜를 입은 만큼 후배들에게 베풀어야 한다.

많은 선배들이 “김미곤은 뛰어난 등반실력과 탱크같이 지칠 줄 모르는 힘을 지녔다”고 말한다. 그런 만큼 대자연을 경외하면서 겸손해야 하리라. 등산의 내면세계를 사랑하며 자신을 과신하지 말고 타 산악인들을 존중하고 아끼며, 격려해야 한다.

국내 유일의 등산전문 실업팀을 운영하고 있는 한국도로공사에 산악인의 한 사람으로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앞으로도 김미곤의 뒤를 이을 우수한 젊은 산악인재를 꾸준히 발굴, 배출하길 바란다. 또한 김미곤을 끝까지 후원한 블랙야크에게도 축하와 함께 깊은 고마움을 전하며, 앞으로도 히말라야 원정과 산악문화의 다양성 추구 그리고 친환경적 산악운동에도 지속적인 후원을 바랄 뿐이다.

등산의 진정한 의미는 스포츠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산악인은 무상의 행위를 통해 마음 깊숙이 자연과 동화된다. 거친 대자연 속에서 자연을 사랑하고, 동료와 자신을 사랑하고, 인간의 진솔한 삶을 사랑한다.



전체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