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호 대장산악인과의 대화

[에베레스트 6회 등정] 허영호 대장, 세계 최고봉 6회 등정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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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6 18:00

동계등정, 횡단등반, 부자 동반등정 기록 달성… 정상 야영은 시도로 그쳐

베이스캠프 캐러밴 도중 남체 바자르에서 미소짓고 있는 허영호 대장. 허대장은 1987년 동계 등정 이후 지난 5월 21일 6회째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다.
베이스캠프 캐러밴 도중 남체 바자르에서 미소짓고 있는 허영호 대장. 허대장은 1987년 동계 등정 이후 지난 5월 21일 6회째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다.

허영호(63드림앤어드밴처 대표) 대장이 지난 5월 21일 오전 6시 30분(네팔 현지시간) 에베레스트(8,848m) 등정에 성공, 세계 최고봉 6회 등정의 진기록을 세웠다. 등반객을 돕는 셰르파의 경우 21회 등정 기록 보유자가 세 명이나 되지만 네팔인이 아닌 클라이머의 6회 등정은 극히 드문 기록이다.

허 대장은 1987년 12월 22일 동계 등정을 스타트로 등정 30주년을 맞는 올해까지 에베레스트를 6회 등정하는 사이 진기록도 여럿 달성했다. 가장 큰 성과로 인정받는 기록은 세계적으로 네 번째인 동계 등정이다. 1993년 중국 티베트 쪽 북릉~북동릉 루트로 정상에 오른 다음 네팔쪽 남동릉으로 하산한 횡단등반은 루트 최초 기록지만 입국 허가 없이 등반함에 따라 네팔 정부로부터 한동안 공식 인정을 받지 못했다. 2010년 등정은 아들 재석(33)씨와 함께 이루어낸 부자 동반 등정이었다. 2016년에는 360도 VR 카메라로 등반 과정을 촬영했다.

허영호 대장은 올해 등반 때 세계 최고봉에서의 텐트 야영을 계획했다. 2007년부터 마음먹은 일이었지만 그간 두 차례의 시도에 불구하고 지진(2015년)과 기후 부적합(2016년)으로 시도조차 못했다. 올해는 마지막 캠프인 사우스콜(7,950m)에 도착했을 때 날씨가 적당하다 싶어 동반 셰르파 세 명과 함께 텐트와 매트리스 등 야영장비와 버너 코펠, 텐트에서 사용할 산소통까지 정상까지 옮겼으나 강추위에 위협을 느끼고 4시간 만에 포기해야 했다.

정상서 가래 끓고 맥박 빨라져 위기감 느껴

허영호 대장은 이번 원정에서 고소적응을 위해 EBC로 일컬어지는 루클라~남체~푼키텡가~탕보체~페리체~고랍셉~베이스캠프 트레일 대신 탕보체 아래 푼키텡가에서 방향을 틀어 산중호수 마을 고쿄로 진입한 다음 고쿄피크(5,360m)를 오르고 촐라패스(5,420m)를 넘어 베이스캠프에 진입했다.

허 대장 일행은 다른 원정대에 비해 10여 일 뒤늦게 베이스캠프를 구축했지만 계획대로 캠프를 올리고 고소에 적응해 가며 등반, 5월 20일 마지막 캠프인 사우스콜에 올라섰다. 

베이스캠프와 제1캠프 사이의 아이스폴. 2015년 봄 지진으로 크레바스가 많이 사라졌다.
베이스캠프와 제1캠프 사이의 아이스폴. 2015년 봄 지진으로 크레바스가 많이 사라졌다.
허 대장은 동행 셰르파들에게 베이스캠프에서 지내는 동안 “정상 야영에 대해 함구할 것”을 요구했다. 사우스콜에 도착했을 때 날씨가 나쁘면 야영 계획을 포기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팀에 비해 산소통을 더 많이 사우스콜에 올리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셰르파들에 의해 결국 계획이 밝혀지고 말았지만 다행히 사우스콜에 도착했을 때 날씨가 좋아 강행할 수 있었다. 

준족의 허 대장은 60세가 훨씬 넘은 나이에도 사우스콜 캠프 출발 이후 속도가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에베레스트는 300명에 이르는 많은 사람들이 도전했지만 위험한 고봉이었다. 이번 시즌 네팔 쪽 에베레스트에서는 ‘스위스 머신’으로 불리는 세계적인 속도 등반가 율리 스텍을 포함해 무려 7명이 목숨을 잃었다. 허 대장이 등정 길에 목격한 외국 클라이머 2명은 산을 내려서지 못하고 말았다. 발코니(8,500m) 아래서 만난 외국인은 고정로프에 매달린 채 손을 흔들었고, 발코니에서 만난 인도 클라이머는 얼굴이 백지장 같았고, 손은 혈색이 전혀 없었다. 

이런 위험 속에서 허영호 대장은 21일 오전 6시 30분 정상에 도착했다. 등정 30주년을 자축하고자 30년 전 동계 등정 때 사용한 피켈을 들고 올랐기에 더욱 기뻤다. 정상은 예전에 비해 많이 변해 있었다. 무엇보다 좁아졌다. 바람이 예상보다 심하게 불어댔지만 계획대로 정상 바로 아래 설사면에 텐트를 쳤다. 하지만 버너 불로 물을 끓이는데도 텐트 안은 온기가 전혀 없었다. 바깥 기온 영하 35℃와 같았다. 2시간쯤 지나자 발가락이 참기 어려울 만큼 시려왔고, 더 시간이 흐르면서 가래가 점점 더 많이 끓고 맥박이 분당 130회를 넘을 만큼 빨라졌다. 무엇보다 폐기능이 나빠지는 징후였다. 체력과 신체조건이 더 이상 이곳에 머물면 생명이 위험하다는 위기감이 느껴졌다. 

“장부! 산소통 갈아 끼고 하산하자.”

함께 텐트 안에 머물고 있던 장부 역시 에베레스트를 7회나 오른 강한 셰르파였으나 정상에서 하룻밤 잔다는 것이 목숨을 건 위험한 시도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위험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허 대장이 하산 결정을 내리자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서둘러 하산길에 들어서 고도를 낮출수록 컨디션이 급속도로 좋아졌고, 사우스콜에 내려서자 가래는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맥박도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등정 길에 탈진해 있던 외국 등반가 두 명은 그 모습 그대로 주검으로 변해 있었다. 

세계 최고봉 6회째 등정에 성공, 환호하는 허영호 대장.
세계 최고봉 6회째 등정에 성공, 환호하는 허영호 대장.
“이젠 높이를 낮출 거예요”

허영호 대장이 세계 최고봉 정상을 노크하는 30년 동안 많은 게 변했고, 그 사이 사라진 클라이머들도 여럿이다. 1993년 횡단등반 때 베이스캠프에서 만난 뉴질랜드의 세계적인 등반가 롭 홀은 1995년 에베레스트 최악의 사고 때 사망했고, 2007년 등반 때 만났던 오희준-이현조는 물론 박영석 대장도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이태 전 지진으로 아이스폴도 많이 변했다. 그 많던 크레바스가 많이 붕괴돼 오히려 등반이 수월해졌다.

“롭 홀은 같은 해 남극점 도보탐험 때도 만났어요. 마운트쿡 등반 때는 함께 햄버거도 먹었고요. 희준이와 현조는 남서벽 등반 도중 마지막 캠프로 내려오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도 했어요. 그날 밤 사고를 당한 거죠…. 참 많이 변했어요. 30년 전 처음 오를 때에는 고정로프가 없었는데 1993년 상업등반이 시작된 이후 고정로프도 깔리고 또 상업등반대 셰르파들이 로프를 완벽하게 설치하기 전까지는 정상에 오를 수 없어요. 올해 봄 베이스캠프에 모인 클라이머가 300명이 넘어요. 스태프까지 치면 800명이 훨씬 넘을 거예요.”

허영호 대장은 1982년 마칼루(8,463m)와 1983년 마나슬루(8,156m) 등정에 성공했고, 알프스 아이거 북벽과 그랑드조라스 북벽 그리고 마터호른 회릉리릉을 등반했다. 7대륙 최고봉 완등과 세계 3극점 도보탐험 모두 성공한 등반가이자 모험가다. 

“이번 원정을 통해 세월의 지혜까지 겸비한 실버 세대에게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심어주고 싶었다”는 허 대장은 그 스스로 세계 최고봉에서 해볼 수 있는 것을 다 시도해 보았고, 또 성공의 기쁨도 누렸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제는 에베레스트를 또다시 오를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베이스캠프에서 카트만두까지 헬기로 이동했어요. 마지막 헬기다 보니 사고시신과 함께 탔어요. 슬로바키아인이었어요. 허무하죠. 하산하면서 세상을 떠난다는 것이…. 이젠 높이를 낮출 거예요, 산을 안 다닐 순 없잖아요. 등반이 제 삶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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