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홍길 대장산악인과의 대화

[‘엄홍길 대장이 말하는 산’] 도전하는 자만이 성공할 수 있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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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6 17:49

실패 두려워하면 안 돼… 자신을 이기는 자가 가장 강한 자

“눈알이 빠질 정도의 두통과 울렁증, 환각, 환청 등의 고소에 시달렸다”며 히말라야의 등반 환경을 설명하는 엄홍길 대장.
“눈알이 빠질 정도의 두통과 울렁증, 환각, 환청 등의 고소에 시달렸다”며 히말라야의 등반 환경을 설명하는 엄홍길 대장.

히말라야는 아시아 대륙 남부에 장장 2,400km나 뻗어 있어 ‘지구의 척추’라고도 불린다. 어원은 고대 산스크리트어로 눈을 뜻하는 ‘히마(hima)’와 거처를 뜻하는 ‘알라야(alaya)’가 합쳐진 것으로 ‘눈의 거처’ 혹은 ‘신들의 거처’란 뜻이다. 또한, 산악인들 사이에서는 해발고도 8,000m 이상의 지대가 갖는 위험성에 기초해 ‘죽음의 지대’로 통한다.

1949년 네팔의 히말라야가 개방되면서 국가 간에 8,000m 거봉 등반이 경쟁적으로 이뤄졌다. 이른바 히말라야 등반의 황금시대가 열린 이래로 무수한 산악인들이 히말라야에서 명멸해 갔다. 노멀루트 초등정의 영광과 등로주의의 제창으로 태동한 히말라야 거벽 등반의 영광 이면에는 치열한 사투 끝에 스러져 간 선배 산악인들의 희생이 있었다.

이러한 위험에도 불구하고 산에 오르는 것은 도전하는 자만이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엄홍길 대장의 설명이다. 도전은 반드시 개척을 수반하고, 개척정신은 변화를 수용해야 빛을 발한다. 변화를 거부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모든 과정의 전제 조건은 결국 도전이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도전을 받아들이고 극복 여하에 달려 있다. 사람들마다 각자의 목표가 있으며 엄 대장의 목표는 단지 산이었을 뿐이다.

경남 고성이 고향인 엄 대장은 세 살 때 의정부 도봉산 중턱으로 이사 오면서 산과 첫 인연을 맺었다. 부모님께서 등산객을 상대로 장사를 시작했기 때문에 집은 산의 초입이 아니라 가까운 도로까지 1시간가량 산길을 걸어 내려가야 하는 완전한 ‘산 속’에 있었다. 등하굣길이 무척 고되어 어린 마음에 부모님에 대한 원망, 산에 대한 불만이 엄청 컸다.

그런 마음을 변하게 한 것은 클라이머들이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전 많은 야영객들이 거쳐 갔고, 특히 집 주변에 있는 두꺼비바위에 주말마다 붙는 클라이머들이 엄 대장의 눈길을 끌었다. 무섭겠다기보다는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배워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태생적인 모험심이다. 중2 때부터 눈을 뜬 클라이밍의 세계는 산에 대한 감정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이제는 2000년 5월까지 40년간 살았던 도봉산을 히말라야로 이끌어 준 모산으로 여긴다.

국내 1,000m대 산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욱 높은 산에 갈증을 느낀 엄 대장은 히말라야로 눈길을 돌린다. 그러나 1985년 넘치는 자신감으로 임한 에베레스트 첫 도전에서 실패하고 난 이후 산에 대한 두려움으로 절대 다시는 산에 가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이를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 38번의 도전 끝에 20번의 성공을 거두게 된다.

엄 대장은 1988년 첫 8,000m급 거봉으로 에베레스트를 오른 이후 5년여 동안 에베레스트 남서벽 등 벽등반에 몰두했다. 1993년부터 본격적으로 거봉 등정 레이스에 나서 1995년 한 해에 마칼루, 브로드피크, 로체 3개 거봉을 오르기도 했다. 안나푸르나에서는 7,600m 고도서 위에서 추락하는 셰르파의 자일을 잡았다가 같이 휩쓸려 오른쪽 발목이 완전히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2박3일간 살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생환했지만 의사에게서 더 이상 등반은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끈질긴 재활로 다섯 번째 도전 끝에 등정에 성공한다.

20번의 성공 이면에는 18번의 실패가 있었다. 18번의 실패 와중에는 4명의 셰르파, 6명의 동료를 눈물로 먼저 떠나보내야 했다. 가장 가슴 아픈 사고는 두 번째 에베레스트 도전 당시 셰르파가 추락사한 것이다. 신혼 3개월의 새 신랑이자 어머니를 모시며 생계를 꾸리는 셰르파의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했을 때 가슴이 미어져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택한 것이 도전이었다. 결국 세 번째 도전 만에 1988년 9월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다. 세 번째의 성공은 앞선 두 번의 실패에서 얻은 경험을 교훈 삼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실패를 자양분으로 삼아 끊임없이 도전한 끝에 히말라야 16좌 등정에 성공할 수 있었다.

엄 대장에게 가장 두려운 순간은 오직 자기 자신을 이겨내지 못하고 좌절하는 순간이다. 어떤 역경도 극복해 내겠다는 투쟁심을 실패로부터 키웠기 때문이다. 위대한 성공은 실패에서 나온다.

후아니토 오이아르자발과의 동행을 재미있게 풀어내자 수강생들이 웃음을 짓고 있다.
후아니토 오이아르자발과의 동행을 재미있게 풀어내자 수강생들이 웃음을 짓고 있다.
인생의 새로운 17좌를 향해

엄 대장이 가장 좋아하는 말은 ‘자승최강(自勝最强)’ 이다. 자기를 이기는 게 가장 강하다는 뜻이다. 히말라야는 도전의 대상이지만 또한 도전이 펼쳐지는 무대이다. 히말라야를 매개로 자기 자신, 스스로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다. 엄 대장은 이후 새로운 도전을 위해 인생의 17좌를 설정한다. 휴먼재단을 발족하고 기후변화 현장탐험가이자 네팔 지역 사회봉사가로서 새로운 인생을 출발했다.

‘엄홍길 휴먼재단’은 2008년 5월 자연사랑, 인간사랑, 꿈과 희망을 가진 불굴의 도전정신을 체계적인 사회봉사활동을 통해 공유, 확산, 발전시키기 위해 발족했다. 특히 교육과 위생이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는 네팔, 파키스탄을 지원하기 위함이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히말라야의 빙하들이 빠른 속도로 녹아내리는 모습을 직접 보면서 심각성을 절감한 까닭이다.

사회봉사로서 첫 사업은 학교 설립이었다. 히말라야 오지에 상존하는 가난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교육시설 마련이 절실하다고 판단했다. 2010년, 두 번째 에베레스트 도전 때 사망했던 셰르파의 고향인 팡보체에 처음으로 휴먼스쿨을 준공한 이후 현재까지 13차 고르카 휴먼스쿨까지 착공한 상태다.

국내에서는 희망원정대, DMZ평화 통일 대장정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희망원정대는 강북구청과 협력해서 관내의 문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문제 청소년만을 낙인 집단 취급해 강제교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일반 학생까지 함께해 스스로 걷고 서로 도울 수 있도록 하여 배려심과 협동심, 단체정신을 키워 준다. 또한 대학생을 대상으로 DMZ평화 통일 대장정을 통해 분단 조국의 현실을 자각시키고 애국심을 고취시킨다.

16좌 등정 이후 사회봉사라는 17좌를 등반하는 엄 대장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등반활동을 인생의 연장선으로 놓고 여전히 도전과 실패를 거듭한다. 그럼에도 도전이 있기에 성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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