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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기맥(漢江岐脈) 청계산

장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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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7 08:31

한강기맥의 끝자락을 찾아 하남을 지나 양평대교로 들어섰다. 검게 실루엣을 드리운 예봉산 능선 위로 구름이 하얀 바다를 이루었다. 한강으로 급하게 내려앉는 예빈산 자락을 뚫은 팔당 제1~4 터널과 신양수대교를 지나 양수역에 도착했다. 북한강과 남한강 사이 양수리로 안겨드는 가정천은 거대한 연꽃 정원을 펼쳐 놓았다.

익숙한 백두대간과는 달리 다소 생소한 '기맥(岐脈)'이란 이름을 가진 한강기맥을 그 긴 줄기가 끝맺는 곳 양수리에서 거슬러 걸어 보기로 했다. 한강기맥은 오대산 두로봉에서 백두대간으로부터 분기해서 계방산, 발교산, 용문산, 청계산 등을 거쳐 양평군 양수리 두물머리까지 북한강과 남한강을 가르며 이어지는 167km 산줄기다.

한강기맥 전 구간을 찬찬히 살펴보니 짧긴 하지만 몇몇 구간은 이미 산행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농다치-청계산, 농다치-용문산 코스는 3년 전 봄과 그다음 해 가을에 각각 친구들과 찾았었다. 작년 초여름의 오대산 상왕봉-비로봉 산행과 4년 전 직장 산악회의 운두령에서 계방산까지 신년 눈꽃 산행도 잊을 수 없다.

신경준 1769년 발간한「산경표山經表」는 우리 땅의 산줄기를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국토의 등줄기 백두대간, 바다로 흘러드는 주요 강의 수계를 가르는 1 정간과 13 정맥으로 족보 책 형태로 분류했다.

박성태는「신 산경표」에서 대간이나 정맥에서 분기한 길이 100km 이상의 기맥(岐脈), 30~100km 미만의 지맥(枝脈)을 분류했고, 신경수는「우리 산줄기 樹體系圖」에서 정맥 아래 산줄기를 18기맥, 118 지맥, 25 분맥, 841 단맥 등으로 나누기도 했다. 「태백산맥은 없다」를 지은 조석필 등 많은 이의 노력으로 일제 때 잊혀간 우리 땅 산줄기의 본모습을 되찾은 것은 천만다행한 일이다. 


 




양수 전철역 뒤쪽의 산자락을 들머리 삼아 진고개와 벗고개를 지나 청계산까지 한강기맥의 미답 구간을 걷고, 형제봉을 거쳐 국수 전철역으로 빠져나오는 코스를 마음에 그려본다. 우후죽순처럼 들어선 빌라촌과 모 그룹 전 회장의 묘역 등에 가로막혀 들머리를 찾아 한참을 두리번거린 끝에 빌라 옆 좁은 둔덕같이 겨우 명맥을 건사하고 있는 기맥으로 접어들 수 있었다.

태양은 어느새 강 건너 산등성이 한 뼘 위로 훌쩍 솟았다. 밤새 내린 비에 젖은 무성한 잡초는 길을 가로막으며 바짓가랑이를 적신다. 좁은 능선 좌측 철망 너머로 왕릉 못지않게 너른 묘역이 언뜻 보인다. 300여 m를 지나 주 능선으로 올라서자 산세다운 모습이 나타나며 나뭇가지에 달린 리본이 '한강기맥'으로 들어선 것을 반겨준다.

많은 라이더들이 눈에 띄던 팔당대교와 양수역 부근과는 달리 한강기맥 산줄기에는 인적이라곤 한 사람도 눈에 띄지 않는다. 멀어지는 모터사이클 굉음에 섞여 가끔씩 뻐꾸기와 장끼 울음이 들려온다. 소리개 고개에서 왜가리 한 마리가 인기척에 놀라 날아오른다. 부용리와 양수리를 잇는 고개 위를 개통을 앞둔 왕복 4차선 아스팔트 길이 넘는다.

조망이 없는 평탄한 산길은 물기를 머금은 낙엽이 깔려 스펀지처럼 폭신하고 곳곳에서 얼굴에 걸리는 거미줄을 손으로 닦아냈다. 성긴 가지 사이를 비집고 든 햇살이 물그림자처럼 산길 위에서 어른거린다. 산객 발길에 놀란 노루 한 마리가 비탈을 가로질러 도망간다. 때 이르다 싶은 매미와 풀벌레들의 합창 소리는 귀를 시원하게 한다. 참나무는 잎사귀에 맺혔던 빗방울을 낮은 가지 잎사귀 위로 투둑 투둑 떨군다.

등성이 한가운데나 좌우에 양천 허공, 경주 김 씨, 상원 최공의 묘역과 큰 상석이 놓인 무명 씨의 무덤이 자리한 능선을 지났다. 오른편에 부용리 공동묘지를 낀 골무봉을 비껴 지났다. 들머리에서 4km쯤 떨어진 곳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이정표는 기둥에서 떨어져 땅에 뒹구는 푯말이 한강기맥에 대한 무관심을 여실히 보여준다. 


 




진고개 고갯마루로 올라서니 예봉산과 운길산 앞으로 남한강을 가로막아 선 노적봉과 삼각 봉우리들이 줄지어선 모습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갑산공원묘원이 자리한다. 교회 묘역에는 '국민요정'으로 만인의 사랑을 받던 故 최진실과 그녀 동생의 묘역이 자리하고 있다.

"만인의 연인! 사랑스러운 그녀
이곳에 잠들다."
만인의 연인이었지만 한 사람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하늘의 별이 되어 영원한 만인의 연인이 된 그녀가 묘비명에서 밝게 웃고 있다.

묘원 뒤쪽 가장자리로 좁고 가파르게 난 등로를 따라 고도를 100여 m를 치고 오르면 해발 300m가 넘는 능선이 시작된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달구지를 끌고 새 정착지로 이동하는 데서 비롯되었다는 '트레킹(Trekking)'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등산(Hiking)'이 시작된 느낌이다.

쌔롱매미 풀벌레의 합창 소리가 온 숲을 가득 채웠다. 햇빛이 들지 않는 풀숲에 맺힌 물방울이 바지를 흠뻑 적신다. 잡목 풀숲을 한참 뚫고 나오니 우측으로 양수리로 흘러드는 북한강과 양서면 마을이 모습을 보인다. 능선 모퉁이를 돌자 큰 골짜기 너머로 멀리 뭉게구름이 걸린 파란 하늘을 이고 좌우로 길게 능산을 거느린 청계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시원한 실바람을 이고 이름 없는 봉우리와 안부를 오르내리던 기맥은 벗고개로 깊숙이 주저앉았다가 등줄기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들머리와 청계산의 중간쯤 지점 해발 225m 벗고개는 은하수 별 사진 찍기에 좋은 장소로 알려져 있다. 소리개 터널과 마찬가지로 콘크리트 터널 위 잘라낸 능선을 원래 모습대로 복원하지 않아 맥을 끊어버린 형국이다.

황순원문학관이 있는 소나기마을 쪽에서 고갯마루로 페달을 밟는 라이더가 힘겨워 보인다. 청계산과 어깨를 나란한 봉우리로 치닫는 비탈이 힘겨워 몇 번을 가다 서다 한다. 실로 등산은 몸과 마음이 서로 배려하고 도닥이며 때론 타협하면서 목표점을 향해 나아가는 자기 내면으로의 모험이다. 자동차에 익숙한 현대인들이 주말이면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땀 흘리며 자전거 페달을 밟고 두 다리로 뛰거나 걷고 높은 산이나 가파른 암벽을 오르는 것도 자기 내면과 대화를 위해서일 것이다. 


 




날쌘 노루처럼 쏜살같이 비탈을 내려오는 산객은 농다치에서 양수까지 한강기맥 막지막 구간의 퍼즐을 맞추는 중이란다. 방향은 다를망정 기맥을 걷는 동행을 만나니 갑자기 기운이 솟는 듯하다. 서로에게 안전 산행을 기원하며 길을 재촉한다.

반쯤 드러누워 '청계산 3.5km'라 가리키는 이정표에 고개를 갸웃하며 올라선 능선 마루의 또 다른 이정표가 청계산까지 2.2km라고 짚어 준다. 가짜가 판치는 세상에 이정표까지 저럴 줄이야, 하며 혀를 한 번 끌끌 찼다.

송골 고개를 지나 해발 658m 청계산 정상으로 향하는 가파른 막바지 구간은 오르기 힘겹다. 산행의 궁극 목적은 산정에 오르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정상에 오르려는 것은 자신과의 싸움의 승패를 가늠하는 잣대로 삼기에 얄팍한 꼼수나 편법을 부릴 줄 모르는 산정만큼 듬직한 것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사방이 툭 트인 청계산 정상에 올랐다. 멀리까지 조망을 펼쳐 보이고 비췻빛 하늘은 백옥같이 흰 구름을 수놓아 어느 쪽을 보아도 한 폭 그림을 보는 듯하다. 가히 한강기맥의 한 주축을 이루는 맹주답다. 정상 옆 단풍나무와 벚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터에 평상 하나가 놓인 움집에서 식혜 한 사발을 주문했다. 7년째 움막을 지킨다는 주인장은 자청해서 사진을 찍어주며 금년 들어 최고의 날씨란다.  


 





청계산까지 예닐곱 산객과 마주친 것과 달리 해발 508m 형제봉을 거쳐 국수 전철역 쪽으로의 하산길엔 단체 산객 등 여러 명의 산객들과 스쳐 지났다. 큰 배낭을 지고 비탈을 오르는 남녀 백패커 둘은 날이 맑아 쏟아지는 별빛도 기대할 수 있지 싶다.

국수 전철역까지 십 리 남짓 산길은 조금은 지루하지만 산책길처럼 쾌적하고 평탄해서 더없이 호젓하다. 국수리로 내려서며 산행을 마무리한다. 산객은 기(氣)가 다하고 진(津)이 빠져 맥(脈)이 풀린 듯 기진맥진(氣盡脈盡)한데, 사려 깊지 않은 개발로 일부 끈기고 잘려 제 모습을 잃은 곳도 있긴 했지만, 한강기맥(漢江岐脈)은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서 용틀임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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