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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수구미,평화의댐 그리고 華川(화천) 산소(O2)길과 "해와달"의 라이브 공연까지~

김규대(kor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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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2 18:38



산행일:2020년 7월 11일(土)

산행지:秘水九美(비수구미),산소(O2)길

午前(오전):해산령-비수구미 계곡-마을(점심 식사)-보트

산행거리:約6.41km

산행시간:約1시간 37분


 

<비수구미 트레킹 개념도>

 

<비수구미 트레킹 GPS 궤적>

 

<비수구미 트레킹 高度差>

 

<비수구미 트레킹 GPS data>


서울 漢江(한강)을 지나는데 너무나 멋진 風景(풍경)이라 인증 샷 하나 남기고,


氣象廳(기상청) 예보로는 장마철(?)이라고 하는데,

우~째 비는 내리지 않는고?


올림픽 大橋(대교) 왼쪽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L-tower(123층-555m)가 솟아 있고,


코로나19로 인해 모두들 힘든 시기를 겪고 있지만,

한강 둔치 운동장에서는 축구를 즐기는 이들도 보이고,


서울,양양간 고속도로를 타기 위해 渼沙大橋(미사대교)를 건너는데,

漢江(한강)을 기준으로 남쪽으로는 검단산(右-657m)이고,

북쪽(左)으로는 예빈산,예봉산,적갑산을 거쳐 운길산(610m)으로 이어지고,


週末(土)이라 고속도로는 정체,지체가 이어 졌지만,

비수구미 들머리인 해산령에 午前(오전) 11시경 도착 했고요,


오래전 재안산과 해산까지 이어갔던 追憶(추억)의 들머리,


본격적인 비수구미 트레킹이 시작되는 들머리에는,

자기들이 다녀 갔다는 signal들이 아주 지저분하게 걸려 있는데,

제발 저런 짓(?)들은 하지 않았음 한다.

무슨 奧地(오지) 산행길에서 登路(등로) 찾기 어려운 지점이라면 모를까,

지들 다녀 갔다는 자랑질(?)같이 보이고요,

남들 보기에도 아주 꼴(?) 사나워 보이지 않는가 싶도다.


해산령 입구부터 비수구미 마을까지는 約6km여 되는데,

住民(주민)들만이 이용하는 車道(차도)라서 꽤 넓고요,


오늘 서울의 某 山岳會(산악회) leading을 부탁 받아 korkim隊長이 함께 했는데,

이분들은 先頭(선두)부터 後尾(후미)까지 함께 걷는걸 원하는가 보다.

물론 각기 다른 방법으로 山行(산행)길을 할수 있지만,

이들이 바라는대로 걷다가 서기를 반복 할수 밖에 없었고,


비수구미는 옛날에는 火田民(화전민)들이 約90여 家口(가구) 살았었기에,

지금은 개망초대꽃이 아름다워 보이지만,

이곳이 먹고 살기 위한 밭(田)으로 이용됐을 터이고,


엊그제 비가 내려 얼마전 찾았을때 보다 水量(수량)이 더 많아진 비수구미 계곡이고요,


비수구미 계곡에서 발 담그는 시간을 가졌는데,

오늘 旅程(여정) 스케쥴이 여러개 잡혀 있어,

korkim隊長은 점심 시간을 約30여분 당겨야 하기에 식당에 전화를 해야 하는데,

워낙 깊은 골짜기다 보니 통화가 되지 않는 지역이라,

부득이 식당까지 달려 가야 했고요,


비수구미 들머리에도 이런 鐵門(철문)이 굳게 닫혀 있고,

住民(주민)들이 자물쇠를 열고 드나드는 형식이고요,


秘水九美(비수구미)란?

원래는 非所古未 禁山東標(비소고미 금산동표)라는 語源(어원)에서 오지 않았나 싶고요,

朝鮮(조선)시대에 宮闕(궁궐)을 짓기 위해,

전국에 소나무로 유명한 곳은 법으로 지정을 하여,

百姓(백성)들이 땔감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했고,

현재에 이르러 "신비로운 물이 빚은 아홉가지 경치"라는 뜻으로,

秘水九美(비수구미)라 불리우고 있으며,


下流(하류)로 흘러가며 계곡의 幅(폭)은 더 넓어지고,


비수구미 마을에는 現在(현재) 4家口가 살고 있는데,

앞쪽으로 보이는 집은 代代(대대)로 사는,

現 里長(이장)네 집인데 얼마전 인간시대에도 나왔던 집이고요,

특히나 집 뒷쪽으로는 里長(이장) 父親(부친)께서 관리하는,

滅種(멸종) 위기종인 "광릉요강꽃"과 "복주머니란꽃"을 키우고 있는데,

지난번에 꽃을 보려고 찾았으나 안타깝게도 約 열흘간 정도만 꽃이 피기에,

시기(5月末~6月初)를 잘못 맞춰 보지 못 했었고요,


火田民(화전민)들이 살던 시기에는 約90여호가 있었기에,

수동 初校(초교)가 있었을 정도였는데,

이제는 分校(분교)도 필요치 않으니 참으로 안타깝도다.


비수구미에 있는 출렁다리,


지난번에는 보이지 않던 이쁜 꽃 團地(단지)를 만들어 놨고요,


비수구미 트레킹을 마치고 횐님들과 맛난 나물 비빔밥을 먹은후,

다음 日程(일정)을 위해 걸어서 버스 있는 곳까지 가려면 約1시간여 남짓,

산속 숲길과 땡볕을 받으며 非포장 도로를 걸어야 하기에,

korkim隊長이 제안을 하여 破虜湖(파로호)를 가로 지르며 달리는 보트(2000원씩)를 이용 하기로 했고요,


海拔(해발) 約700여m 지점인 해산령부터 트레킹을 시작하여,

비수구미마을(海拔200여m)까지 내려 왔는데,

계곡물은 흘러 흘러 破虜湖(파로호)로 들게 돼 있고,


보트를 타고 바라본 破虜湖(파로호),


破虜湖(파로호)는?

1944년 日帝(일제)에 의해 電力(전력) 공급을 위해 만들어진 湖水(호수)로써,

6.25 戰爭(전쟁)때 中共軍(중공군) 約3만여명을 水葬(수장)시킨 곳으로,

원래 명칭은 大鵬湖(대붕호) 또는 華川湖(화천호)로 불리우다가,

이승만 대통령이 중공군을 격파 했다는 뜻으로,

破虜湖(파로호)로 불리우게 됐고요,


破虜湖(파로호) 북쪽 가까이로는 전두환 정권에 만들어 진 平和(평화)의 댐이 있고,


자기들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함으로 국민들을 속여,

어린이들의 코흘리개 돈까지 獻金(헌금)으로 내게 하여 만들어 놓은 평화의 댐은,

전혀 쓸모없는 헛짓(?)이 되어,

댐 아랫쪽으로는 오토 캠핑장으로 쓰이고 있는데,

한낮에는 땡볕으로 인해 엄청 더울듯 싶고요,


평화의 댐 下流(하류)에서 바라본 모습,


자그마한 보트이기에 비수구미 마을에서 여러번 나눠서 나와야 했고요,


이런 햇볕에 非포장 道路(도로)를 걷는다고 생각 해 보시라~

과연,

얼마나 힘들꼬?


단돈 2000원으로 破虜湖(파로호) 물길을 가르며 보트투어(?)를 즐기는 기분이 어떨까나.


정말 모두들 즐거워 했고요,


비수구미 트레킹을 마치고 맛난 점심을 먹은후,

보트를 타고 破虜湖(파로호)를 나와서,

하나라도 더 보여주기 위해 관광버스 기사님한테 부탁을 하여,

평화의 댐까지 約5분여 이동을 한후,

인증 샷 찍는 정확하게 10분만 주기로 했고요,


午後(오후):평화의 댐 둘러보기

華川(화천) 산소(O2)길

산행코스:미륵바위-pontoon(폰툰)橋-숲으로다리-原始林(원시림)-화천대교

산행거리:約4.88km

산행시간:1시간 8분

 


<화천 산소(O2)길 안내도>

 

<화천 산소(O2)길 GPS 궤적>

 

<화천 산소(O2)길 高度>

 

<화천 산소(O2)길 GPS data>


평화의 댐 공원에 만들어 놓은 "노벨 평화의 종"


세계 平和(평화)의 鐘(종)으로,

예전에는 鐘을 치기 위해 얼마의 돈(?)을 내고 칠수 있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통제를 하고 있었고요,


세계 각국 지도자들과 악수를 하며 인증 샷 할수 있는 곳이고요,


평화의 댐 공원 풍경,


1986년 전두환 정권에 의해 만들어 진 평화의 댐으로써,

높이 125m,길이 601m,총 저수용량 26억3천만ton으로,

北韓(북한)의 금강산댐을 대응하기 위해 만든다고 했었고요,


당시 미국의 워싱턴포스트지에서 말하기를,

"불신과 낭비를 상징하는 사상 최대의 기념비적 공사"라고 평가 했으며,

대학생들을 상대로 묻는 여론조사에서는,

"대한민국 최대 거짓말"로 불리우게 된,

말로만 남게 된 평화의 댐이고요,


korkim도 여러번 찾았던 평화의 댐이지만,

滿水位(만수위)를 본적도 없을뿐만 아니라,

아마도 前無後無(전무후무) 하게도 그런 일은 없으리라 보고요,


평화의 댐이라~


국민들의 誠金(성금)으로 만들어 놓은 댐이라 그런지 엄청 튼튼하기는 할테고,


평화의 댐 下流(하류)에는 破虜湖(파로호)가 있고요,

이물은 흘러 흘러 春川 衣巖湖(의암호)와 昭陽江(소양강) 물로 합쳐지고,

下流(하류)로 흘러 가며 淸平湖(청평호)를 거쳐,

두물머리(兩水里)에서 南漢江(남한강)과 만나 漢江(한강)이 되어,

서울과 首都圈(수도권) 市民(시민)들의 食用水(식용수)로 활용이 되고,

西海(서해)로 흘러 큰 바다를 이루게 된다.


화천 산소(O2)길을 찾아 왔고요,

미륵바위 주차장에 버스를 세우고,

횐님들과 함께 산소(O2)길 코스중에서 꼭 걸어봐야 하는,

pontoon(폰툰)橋를 넘어 숲으로 다리를 거닐어 볼 예정으로,

一名(일명) "파로호 산소(O2) 100리길"로 불리우며,

원래는 자전거 도로로 만들어 졌으나,

일부 코스는 散策(산책) 하기에 좋은 곳이라,

많은 이들이 찾고 있는 곳이고요,


화천 산소(O2)길은 관리가 잘 되는 듯 했고요,


江(北漢江) 건너로 "숲으로 다리"는 쭈~욱 이어지고,


자전거 매니아들이 이용하는 코스라 좋아라 할듯 싶은데,

요즘 MTB(산악자전거)를 타는 일부 못된 nom들은,

일반 등산로에서 무리지어 타고들 있으니,

도대체 왜 그런 겨?

各 지자체에서 현수막을 걸어 놓은 걸 자주 보는데,

"등산로에서 타는 걸 자제 해 달라"

아마도 법적으로는 별 규제 방법이 없는 듯 하고요,

제발,

윗것들만 상식적이지 못한 행동들을 하는게 아니라,

아랫것들까지도 非상식적 행동들에 취(?)해 버려,

도대체가 이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도다.

ㅉㅉㅉ~


잔잔해 보이는 北漢江(북한강),


화천 산소(O2)길 안내도,


건너야 할 pontoon橋(폰툰교),


pontoon橋(폰툰교)를 건너 北漢江(북한강)을 따라 下流(하류)로 이동하며,

한참동안 "숲으로 다리"를 거닐어야,

原始林(원시림) 숲길로 이어지고,


pontoon橋(폰툰교),


"숲으로 다리"는?


pontoon橋(폰툰교),


pontoon橋(폰툰교)에서 바라본 北漢江(북한강) 下流(하류),


北漢江(북한강) 上流(상류),


pontoon橋(폰툰교)를 건너와 "숲으로다리"를 한참동안 거닐어야 하고,


건너 와 바라본 pontoon橋(폰툰교),


北漢江(북한강)과 "숲으로다리"


길게 이어진 "숲으로다리"를 걷다가,

隊員(대원)들 전부를 leading할수 없기에,

정예 멤버 10여명만 델꼬 화천대교까지 거닐어 보기로 했고요,


pontoon橋(폰툰교)를 건너 한참동안 "숲으로다리"를 걸어 와,

이제부터 散策(산책)다운 원시림길로 접어 들게 되고,


솔직히 原始林(원시림) 같지는 않지만,


山行(산행)하는 이들이 좋아라 하는 코스고요,


특히나 北漢江(북한강) 물줄기 따라 걷는 내내 幸福(행복)한 길이였고,


화천대교 까지는 約1.3km여 남았고요,


꽃으로 이쁘게 단장 해 놓은 華川大橋(화천대교),


우리나라 最大(최대)의 지역 행사로 자리매김한,

"화천 산천어" 축제가 열리는 곳으로,

korkim도 몇년전 찾아와 산천어낚시로 6마리 잡았던 追憶(추억)이 있고요,


꼭 거닐어 봐야 할 화천 산소(O2)길 트레킹을 마치고,

"해와달"의 夫婦(홍기성,박성희) 歌手(가수)가 운영하는 라이브 갤러리에 들러,

隊員(대원)들과 約1시간여 멋드러진 Live(라이브) 音樂(음악)을 즐겼고요,


4살된 "다루"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Golden Retriever(골든리트리버)種이고요,


"해와달"님이 운영하는 라이브 갤러리,


예전에 TV 放送(방송) 됐던 걸 잠시 봤고요,


夫人(부인)이신 달님(박성희)이 먼저 한 曲調(곡조) 하시고,


라이브 갤러리 內部(내부)를 原木(원목)으로 꾸며 놓으셨는데,


原木(원목)이 오래 될수록 노랫소리가 더 빛이 난다고 하고요,


아울러 달님의 圓熟美(원숙미)가 더욱더 빛나는 듯 하더이다.


"해와달"님의 完城體(완성체)로 많은 박수를 받으며 인사를 했고요,


대표곡인 "축복"을 부르며,

부부간의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뤘고요,


시간적 여유로움이 있었다면 아마도 앙코르(encore)가 계속 이어졌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고,


솔직히 korkim 개인적으로는 잘 알지 못하는 노래와 歌手(가수)지만,


"해와달"님의 노랫소리는 꽤 아름다웠고요,

또한,

함께 한 一行(일행) 몇명은 잘 아는 듯 하더이다.


"해와달님"의 라이브 갤러리 건물로써,

앞쪽으로는 北漢江(북한강)이 흐르고,

뒷쪽으로는 나즈막한 산이 있어,

흔히 말하는 背山臨水(배산임수)터로 아주 좋아 보였고요,


이날도 週末(土)이라 그런지 대형버스가 몇대 들어 왔다고 하고요,

물론 큰 길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지만,

길이 좁은 관계로 기사님들 입장에서는 들어 오기 싫어 하리라 보이고,


모두들 音樂(음악)에 빠져 오랫동안 즐기고 싶었지만,

시간적 여유로움이 없는 관계로,

約1시간여 짧은 Live 음악을 들을수 밖에 없었고,

週末(土)이라 歸京(귀경)길에 차가 많이 밀리것 같아 걱정을 했었지만,

多幸(다행)스럽게도 이른 시간 서울에 도착할수 있었고,

아마도 전국적으로도 이런 규모(約3만여명)의 山岳會(산악회)가 흔치 않기에,

전국 산악 랭킹 1位가 아닌가 싶고요,

korkim은 이 山岳會(산악회)의 회원도 아니지만,

1日 leading隊長으로 부탁을 받아 行事(행사)를 진행 했고요,

아무탈없이 오늘 旅程(여정)을 잘 마친것 같아,

모두에게 感謝(감사) 드리며,

또 다른 旅行地(여행지)와 山行地(산행지)에서 만날수 있길 기대 해 봅니다.


-The end-





전체댓글1
아싸
2020.07.1615:14 신고
북한의 임남댐(금강산댐)에 대응하기 위해 1987년 2월28일 1차 착공된 댐 입니다. 물론 이 후에 위에 언급하신대로 불신이 있었지만, 95. 96년도 집중호우때 홍수조절 기능이 입증 되었다고 2002년 임남댐 상층부 균열과 붕괴 위험으로 2006년 2차 증설이 완료 됩니다. 그 후 2011년에 3차로 보강 공사를 해서 현재의 모습이 된것 입니다. 현장에 보시면 댐의 색상이 절반 부분에서 차이가 나는데 아래가 1차 위쪽이 2차로 증설한 부분 입니다. 평화의 댐이 만들어 질때 위험이 과도하게 부풀려 졌다고 해서 의혹이 있었지만 결국 이 후 정권에서도 댐의 역활을 인정하고 3차 공사까지 완료 되었습니다. 내가 평화의 댐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춘천에서 군생활 할때 댐 공사 한다고 군 장비와 인력이 많이 투입 되었지요 . 아주 가끔 댐을 방문하게 되면 우리의 현실을 보여 주는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깊은 산속에 대응댐을 만들어서 이렇게 까지 해야 하는 현실이 답답하지요. 그리고 북에서는 임남댐을 만들고 배수는 동쪽으로 돌려서 물 부족을 많이 걱정 했는데 그건 사실은 알고 있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