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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도, 작지만 아름다운 것들

장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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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8 23:46

김포와 강화도를 거쳐 교동도로 향한다. 이른 아침부터 북적이던 도로는 목적지에 가까와질수록 교통량이 점점 줄어들어 소통이 원활하다. 두 섬을 잇는 교동대교 입구 초소에서 소총을 든 장병이 거수경례로 맞이한다. 활주로처럼 뻗은 대교 위를 막힘없이 달리니 일상을 박차고 벗어나 창공으로 비상하는 느낌이다. 꿈, 별, 강, 산, 삶 등과 같이 '섬'도 짧지만 많은 것을 내포한 특별한 단어다. 엄지족들이 맘, 빠, 샘 등 한 글자로 줄여 부르는 것은 그 대상에 각별함을 표현하려는 때문일 것이다.

연륙교가 놓이면서 교동도는 세상과 많이 가까와졌다. 강화도 쪽을 바라보는 월선포 선착장으로 향했다. 좁은 주차장에 차량 너댓 대와 텐트 두어 채가 서있고 낚싯대 두어 개는 바다 쪽 난간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다. 잔잔한 바다 건너편 별립산 머리 위 검푸른 구름 사이로 내리비치는 햇살이 광배처럼 신비롭다. 예보와 달리 바람이 제법 차다. '강화나들길' 20개 코스 중 제9코스 '다을새길'을 따라 월선포 선착장으로 원점 회귀하려던 계획을 바꾸어 교동읍성-월선포 해변 구간 등 6km 여를 생략하기로 했다. 




월선포에서 교동읍성 남문으로 향했다. 동남북 세 개의 성문, 둘레 430미터, 높이 약 6미터의 읍성은 인조 때인 1629년 축조되었다 한다. 성벽은 남지 않았고, 성문 중 유일하게 남은 남문는 1921년 폭풍우로 문루가 무너졌다가 2018년 복원되었다고 한다. 고요한 농가들 사이에 자리한 낮고 아담한 남문 앞에 차를 세우고 향교-화개사-화개산-연산군 유배지-대룡시장을 거쳐 이곳으로 회귀하기로 했다. 어림잡아 십 여 킬로미터 코스다. 

교동남로를 건너 교동향교와 화개사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향교 앞 홍살문 옆에 하마비를 필두로 그 뒤로 영세불망비, 애민선정비, 석축비 등의 글자가 새겨진 비석 40기가 도열한 비석군이 있다. '心淡如水 政明代火 德加泰山 恩比碧海'라 적힌 겸부사 이명학 선정비가 도드라져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교동향교 돌계단 위 대문을 들어서면 명륜당이 맞이한다. 그 뒤로 정면 다섯 칸 대성전이 자리하고 동무, 서무, 제기고, 주방 등이 좌우에 딸려 있다. 고려 인종 때인 1127년 화개산 북쪽에 처음 세워졌다가 조선 중기에 현 위치로 옮겼고 1980년에 복원했단다. 충렬왕 때인 1286년 안향이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공자 畫像을 가져왔는데, 첫번째로 배를 댄 고려땅 교동도에 문묘를 세우고 화상을 모신 것이라 한다. 그 후에 최치원, 설총, 안향, 정몽주, 조광조, 이황, 이이 등 우리나라 18현인의 위패도 봉안했다고 한다. 방명록에 '明明德天下'라 적고 향교 밖으로 나섰다. 




낮고 소담한 향교 기와담 위로 사철나무가 연녹색 잎이 무성한 가지를 내밀었고 우뚝한 은행나무는 기개가 의연하다. 향교 서측 담장 밖의 대성전에서 흘러나온다는 성전약수는 물이 말랐다. 산자락 숲길을 따라 화개사 쪽으로 걸으며 어린 나무를 목조르고 있는 '강화 나들길' 리본을 느슨하게 고쳐 매어 주었다. 경사진 아스팔트 길이 끝나는 곳에 단출한 법당 한 채가 자리한 화개사가 나온다. 마침 부처님 오신 날, '華蓋寺'란 현판이 걸린 법당 뜨락에서 불자를 맞는 비구니 스님과 법당 안 부처님 모두 얼굴에 미소가 완연하다. 법당 앞 너른 잔디 마당에 서니 잔잔하고 넓게 펼쳐진 강화 바다가 앞마당 처럼 훤히 내려다 보인다. 한 번 합장을 하고 화개사 옆 '화개산 봉수' 푯말을 따라 그 산기슭을 오른다. 온통 자갈이 덮인 경사진 길이 몸에 땀이 배이게 하더니 산정과 연산군 유배지로 갈라지는 곳 능선에 올라서니 바람이 세차다. 조금 전 벗어 배낭에 넣었던 자켓을 얼른 꺼내어 걸쳤다. 능선마루에 올라서니 삼면이 툭 트였다. 

출발 지점과 지나온 곳 그리고 가야할 길을 눈으로 짚어보며 머리속에 그려본다. 높은 곳에 오르면 가야할 길도 자명히 보이는 것이 이치다. 고점에서 집착하며 머뭇거리다가 어디로 가야할지 헤매는 아둔한 인생도 적지는 않지만. 산정으로 난 평탄한 능선 오른쪽으로 바다와 강화도 석모도의 산군이 펼쳐져 있다. 산괴불주머니 한 그루가 봉수터 바위틈에서 꽃을 피웠다. 봉수를 산정이 아니라 능선에 둔 것은 세찬 바닷바람 때문이었을까? 힐끗힐끗 좌측으로 돌아보지만 기대와 달리 아직 바다 너머 북녘 산하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봉수대 터를 지나 봉긋 솟은 개화산 정상이 보이는 능선 길목에서는 지그재그형 선과 구멍을 새긴 청동기 시대 암각화 바위도 만날 수 있다. 

사각 탁자처럼 반듯하고 너른 해발 259.6m 화개산 정상은 거칠 것 없는 조망을 사방으로 펼쳤다. 북쪽 강물처럼 잔잔한 바다 너머로 이북 땅이 누워있다. 맑은 날이면 보인다는 연백평야, 예성강 하구, 송악산 등을 희뿌연 하늘이 감추고 내놓질 않는다. 화개산에 한 번 올라보면 이 산을 전국 8대 명산 중 하나로 꼽았다는 이색의 안목에 딴지를 걸 수 없지 싶다. 




나들길은 정상에서 오른쪽으로 자연 절벽을 끼고 동진하는 화개산성을 따라간다. 고도를 낮추며 3~400m 진행하던 길은 방향을 180도 바꾸어 능선 아래 숲길을 따라 산정 아래쪽의 화개약수터와 효자 묘로 인도한다. 만발한 철쭉은 붉고 안내판 뒤 초록 풀에 덮인 '효자묘'가 돌담 아래 누워 있다. 

 "그 땐 약수물이 줄줄 흘렀어." 

"주인은 없는데 묘 앞에 절을 올린 손발 자욱이 또렷했었지." 

 연배로 보이는 두 분이 약수터로 올라서며 이곳 토박이라는 분이 동행에게 학창시절 이곳으로 소풍왔던 기억을 어제 일처럼 되살려 들려준다.

돌계단과 나무계단을 번갈아 지나면서 화개산 동쪽 기슭으로 내려간다. 나들길 아래 능선에 둘러싸여 하늘만 보일듯한 곳에 탱자나무 울타리가 둘러쳐진 한 평 남짓 넓이 초가집 연산군 위리안치소가 재현되어 있다. 방 안에 고개 숙이고 앉은 온기 없고 무표정한 마네킹 얼굴은 절망, 분노, 체념, 그리고 결국엔 자포자기로 치달았을 연산군의 심경을 보는 듯하다. 돈의문으로 나와 연희궁, 김포, 통진, 강화, 교동고읍을 거쳐 이곳 고구리에 위리안치된 연산군은 유배 64일 만에 숨졌다고 한다. 이곳에 일시 유배되었던 광해군과 이곳에서 생을 마감한 고려의 희종과 조선의 안평대군, 임해군, 능창대군 등의 유배지, 교동도에는 그들의 한, 그리움, 좌절된 꿈, 절망 등이 뒤섞여 응어리져 있을 것이다. 

몰려드는 마스크를 쓴 상춘객들을 피해 산길로 올아와 솔길을 따라 마을 쪽으로 향한다. 유배지 아래 계곡 사방댐 옆에 돌을 쌓아 만든 돔형 한증막이 남아 있다. 조선 후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고 1970년대까지 주민들이 사용했단다. 대룡시장으로 내려가는 골목 언덕바지에 지붕에 십자가가 달린 작은 건물 앞에서 여러 명이 모여 시멘트로 계단, 담벽, 아치형 문 등을 다듬고 세우는 작업를 막 마무리하고 있다. 

"올라가 보세요" 

"성전에도 들어가 보시구요" 

바쁜 와중에도 두리번거리는 길손에게 둘러보라며 말을 건넨다. 제주도 등에 이어 세 번째로 세운 '순례자의 교회'라고 한다. 지나는 이 아무나 잠시 걸음을 멈추고 들러 명상을 할 수 있게 세웠다는데, 세상에서 가장 작고 아름다운 마음이 담긴 교회가 아닐까 생각된다. 




담벼락 여기저기 노란 유채꽃이 핀 골목을 지나고, 문이 닫힌 목욕탕, 그 옆 우시장 터와 우물 터를 지난다. 아치형 스테인드글라스가 인상적인 교동성당이 소담스럽다. 사제관 창문 너머 얼핏 보이던 벽안의 노인은 1960년 한국에 파견되어 오랜 사역활동을 해오다가 2004년 은퇴 후 이곳에 머무른다는 로베르또 신부님일 것이다. '나의 아름다운 성당 기행'이라는 책이 있었는데, 이처럼 궁벽하고 외져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구원의 소망을 전하는 성당보다 더 아름다운 곳이 또 있을까? 

바다 건너 황해도 연백군 실향민들이 연안시장을 본따서 만들었다는 대룡시장, 그 입구는 주차된 외지인 차량들로 빽빽하고 좁은 시장 골목은 봇물 터진 도랑처럼 인파로 넘쳐난다. '청춘브라보'라는 가게에서 강아지떡 한 팩을 사들고 시장을 나섰다. 차량을 피해 아스팔트길과 농로를 번갈아 지나서 교동읍성으로 돌아왔다. 차량이 밀리는 반대 차로와는 달리 시원스레 뚫린 교동대교를 빠져 나온다. 골목 노란 유채꽃이 '작은 것도 아름답다, 어쩌면 작은 것이 더 아름답다.'라 속삭이며 손을 흔들고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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