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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인 황대연]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 <完>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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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1 10:04

산객의 고산등반 이야기

일곱 번째 -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산

Mt. Kilimanjaro

산악인 황대연 

등반일자 2019. 01. 09 ~ 01. 20 

킬리만자로, Day 5.

<주요구간>

호롬보산장Horombo Hut 3,720m ~ 제브라 락Zebra rocks 4,050m ~ 호롬보산장Horombo Hut 3,720m

<도상거리> 6.8km

쬬르릉~ 쬬르릉영롱하게 우짖는 산새소리에 잠에서 깼다. 나도 모르게 밖으로 나왔다. 주위를 둘러봐도 새는 보이지 않았다. 이 높은 곳에도 새가 살고 있다니, 무슨 새일까? 나중에 확인해보니, 고산에 사는 지빠귓과의 작은 새 알파인 쳇Alpine chat'이다.

때마침 새로운 하루가 열리고 있었다. 산장 앞 동쪽하늘이 새벽여명에 붉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구름과 구름 사이를 비집고 떠오르는 일출의 모습은 숨이 멎을 것 같이 경이로웠다. 그 기운이 따스하게 전해져와 가슴까지 훈훈해져왔다. 하늘에는 흰 구름이 멈춰있는 듯 천천히 흘러갔다. 발아래에는 구름이 바다를 이루고 있다. 구름파도가 잔잔하게 일렁일 때마다, 구름과 함께 어디론가 흘러갈 것만 같았다. 여명과 운해의 조화, 이토록 아름다운 일출을 보라고 새가 잠을 깨운 건 아닐까?

아침식사는 북엇국이다. 북엇국의 시원한 맛이 입맛을 돋우었으나식사량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고산증이 시작된 듯하다고산에서는 일사천리로 고도를 높여줄 수 없다서서히 몸을 고산에 적응시키며 올라야한다오늘은 4,000m에 진입하여 고산적응을 한다.

 호롬보산장에서 바라본 일출과 운해

최 팀장은 교과서대로 움직였다. 출발에 앞서 준비체조 하는 것은 단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다. 그뿐이 아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만사 빈틈이 없다. 설명하고 또 설명했다. 흔히 하는 말로 완전 에프엠이다. 하긴 그래야 한다. 느슨하면 그만큼 사고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그의 나이는 29, 미혼이다. 그럼에도 그의 언행은 나이에 비해 범상치 않다. 절도가 있으며 노련함이 있다. 요즘 보기 드문 젊은이다. 내가 그 나이 때는 세상물정 모르고 혈기만 넘쳤으며 모든 게 부족하고 미숙했다. 분명 그에게는 뭔가 있다. 그게 뭘까?

등반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그 답을 알 수 있었다. “어려서부터 알바를 했다. 해병대 공수부대에서 군 복무를 했으며 조교생활을 했다.” 그의 말 한마디에 의문은 시원하게 해소되었다. 사회에서 크게 성장할 재목임이 틀림없다.

갈림길에서 우측 길로 들어섰다. 좌측 길은 내일 정상에 갈 때 가야할 길이다. 오늘도 오른쪽으로 마웬지피크를, 왼쪽으로 우후르피크를 바라보며 걸었다. 킬리만자로에 있는 세 개의 봉우리 중 해발 3,962m의 시라피크는 정상 뒤편에 있어 보이지 않았다.

좌우 계곡에는 세네시오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세네시오 위부분에는 푸른 잎이 있고 그 아래에는 낙엽이 된 잎이 켜켜이 달라붙어있다. 푸른 잎으로는 광합성을 하고 낙엽이 된 잎은 몸통을 감싸며 추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수분증발을 막는 역할을 한다. 이는 생존하기위한 전략이다. 일반적인 나무는 겨울이 되면 모든 잎을 땅으로 돌려보내고 몸통을 살리는 전략을 쓴다. 여러모로 대비되는 모습이다. 그런 세네시오가 신비스러웠다. 가까이 다가가 그의 몸에 귀를 대어보았다. 침묵만 흐르고 있다. 살며시 손을 대보니 낙엽이 된 잎은 딱딱했다. 힘주어 만지자 부스러졌다.

하 교수가 사진을 찍으려고 빠른 걸음으로 세네시오 옆으로 다가갔다. “어이쿠~” 소리와 함께 한쪽 발이 작은 웅덩이에 빠졌다등산화 속까지 물이 들어갔다다행히 양말 두 켤레를 겹쳐 신어 젖지 않은 쪽 양말을 나누어 신을 수 있었다.

신비한 모습의 세네시오

어찌된 일인지 왼쪽 무릎이 절룩거릴 정도로 시큰댔다. 지난해 5월 산행 중 미끄러져 무릎인대가 찢기는 사고를 당한 적이 있는데, 그 후유증인 듯하다. 염려가 되어 이곳에 오기 전 병원에 들려 점검을 받았다. 물이 조금 차있기에 물을 빼고 약을 처방받아 가지고 왔다.

길옆에 높지는 않지만 크고 넓적한 바위가 있다. 바위 위에는 지나는 사람들이 소원을 빈 듯 자그마한 탑을 쌓아놓았다. 돌 하나를 주워들고 바위에 올라갔다. “신이시여! 무탈하게 정상에 오르게 하여 주시옵소서!”

제브라 락에 이르렀다. 길이 20m, 높이 5m 정도의 암벽이 얼룩져있다. 마치 색색의 페인트로 위에서 아래로 칠을 해놓은 것 같았다. 바위에 함유되어있는 알칼리성분이 오랜 세월 녹아내리면서 형성되었다고 한다. 암벽 중앙에는 귀를 쫑긋 세운 얼룩말 한 마리가 있다. 제브라 락, 글자 그대로 얼룩말 바위이다. 손으로 톡 건드리기만 해도 당장 뛰어나올 것만 같았다. 저 얼룩말에 올라 단숨에 정상에 오를 수는 없는 걸까? 신비스럽기만 하다.

이 길로 계속 오르면 해발 5,149m의 마웬지피크Mawenzi peak이다. 내친김에 오르고 싶었지만 일정에 없다. 제브라 락에서 고산적응을 마치고 산장에 돌아왔다.

점심은 라면이다. 맛은 좋았으나 한 그릇 이상 목구멍으로넘길 수 없었다오후에는 아이젠 등 장비를 점검하고 휴식을 취했다.

필자 얼굴 앞 바위에 있는 얼룩말 한 마리가 당장 뛰어나올 것만 같다

산장 옆에서 졸졸 개울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개울가에 내려가 잠시 손을 담가보았다. 차갑기는 했으나 에베레스트처럼 손이 시릴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명색이 킬리만자로 만년설이 녹은 물이다.

저녁은 꽁치김칫국이 나왔다. 얼큰한 게 속이 다 시원하다. 고산에 적응되어서인지 입맛도 살아나고 출출하던 차여서 한 그릇 더 청해먹었다.

식후에 2차 짐 분류를 했다. 내일과 모레 이틀간 정상등정에 필요한 장비, 의류, 간식, 구급약 등만 배낭에 넣고 나머지는 이곳에 보관한다.

저녁 730, 일찌감치 침낭에 들었다. 잠이 오든 않든 누워만 있어도 어느 정도 피로회복이 되기 때문이다. 새벽에는 영하 5도까지 떨어진다. 옷을 껴입고 침낭 속에 핫팩을 넣었다.

침낭에 들기 전 하 교수가 파스를 꺼내어 내게 내밀었다. 고산적응을 할 때 다리가 불편한 것을 안 하 교수의 배려이다. 하 교수의 발걸음은 날렵하고 가볍다. 이곳에 오기위해 연습산행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문득 반딧불이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그와 그녀는 꽤 많은 거리를 걸었다. ‘체력이 상당히 좋구나.’ 그가 걱정스럽게 말했다이래 봬도 중학교 때는 장거리 선수였어. 게다가 아버지가 산을 좋아한 탓에 어릴 적부터 일요일만 되면 등산을 했고, 그래서 지금도 다리 하나는 튼튼해.’ 그녀는 웃음지었다.

킬리만자로, Day 6

<주요구간>

호롬보산장Horombo Hut 3,720m ~ 키보산장Kibo Hut 4,720m

<도상거리> 10.1km

오늘은 5, 6, 7 법칙이다. 5시 기상, 6시 식사, 7시 출발이다. 일찍 출발하여 일찍 마치고 일찍 휴식을 취해야하기 때문이다.

아침에는 미역국에 눌은밥이 나왔다. 눌은밥은 누룽지에 물을 붓고 푹 끓여 구수하고 소화가 잘된다. 한 그릇 더 청해먹었다.

출발에 앞서 스텝들이 킬리만자로 노래를 불러주며 성공을 기원해주었다. '킬리만자로의 노래Song of Kilimanjaro'는 경쾌한 리듬에 따라 부르기도 쉽다. 몇 번 듣다보니 중독성이 있는지 자꾸만 듣고 싶다.

JAMBO JAMBO BWANA HABARI GANI

(잠보 잠보 비와나 하바리 가니)

NZURI SANA WAGENI MWAKARIBISHWA

(니주리 사나 와기니 와가리비솨)

KILIMANJARO HAKUNA MATATA

(킬리만자로 하쿠나 마타타)

구름에 쌓인 우후르피크

넓은 길은 사라지고 돌이 울퉁불퉁하게 박혀있는 좁은 길이 이어졌다. 이곳 계곡에도 세네시아가 무리지어 있다. 구름에 둘러싸인 우후르피크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다. 구름이 흘러가 우후르피크가 잠시 얼굴만 보여주기도 하고 어깨까지 보여주기도 한다. 얼굴은 가린 채 가슴만 보여줄 때도 있다. 하지만 모습 전체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왜 이리 애만 태우는 걸까?

8부 능선 위 일부에 쌓여있는 만년설은 힐끗힐끗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거듭한다. 지도를 그려놓은 듯, 얼룩지듯 일부만 남아있다. 나머지는 벌거벗은 채이다. 그 많은 만년설은 모두 어디로 갔단 말인가?

헬기장 옆에 쉼터가 있다. 벤치에 앉아 있으려니 작은 들쥐 한 마리가 나타났다본래 의심이 많은 동물이라 가까이 오지도 않는다갑자기 나타나 쭈뼛거리다 금세 사라진다이 높은 곳에 들쥐라니이곳에서 무얼 먹고 살아갈까지나는 사람들이 먹다 흘린 음식물을 먹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일부러 빵부스러기를 조금 흘려놓았다들쥐는 다람쥐처럼 몸통에 줄무늬가 선명한 게 귀여웠다. '킬리만자로 들쥐Kilimanjaro Mouse Shrew'이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지대

사막지대에 들어섰다. 사막지대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가도 가도 끝이 없다. 대략 5km 정도 되는 듯, 길고 넓고 광활하다. 나무 한 그루 없이 황량할 뿐이다.

현지인이 구루마를 끌고 스쳐갔다. 철제로 만들어져있으며 가운데에 바퀴 하나 달랑 붙어있을 뿐이다. 호롬보산장에 5대가 널브러져있던 그 구루마이다아마도 긴급환자가 발생하면 쉼터 옆 헬기장까지 이송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아닐까?

긴급환자 이송용으로 쓰이는 구루마

새들Saddle 표시판과 키보Kibo 표시판을 스쳐지나갔다. 길옆에는 누군가가 작은 돌로 글자를 만들어놓았다. 지나던 사람들이 자기 이름을 만들어놓은 것 같았다. 그렇게라도 해야 긴 사막지대를 통과하는데 지루함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었을 것이다. 사막지대가 끝나갈 즈음 두 번째 쉼터에 이르렀다.

사막지대를 통과하며 무릎아래는 흙먼지가 허옇게 묻어있다. 산장에 미리 와있던 보조가이드는 먼지떨이를 손에 들고 대원들이 도착하는 대로 등산화와 바지에 묻은 흙먼지를 일일이 털어주었다. 전혀 예상치 않은, 감동이다.

산장은 정상인 우후르피크 아래, 고요 속에 자리하고 있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직삼각형 건물 여러 동이 들어서있다. 앞마당과 옆과 뒤 공터에는 텐트 십여 동이 설치되어 있다. 예약이 안 된 사람들이 야영을 하는 듯하다.

정상의 이름은 키보에서 우후르로 바뀌었으나 산장 이름은 아직 그대로 키보이다. 키보라는 이름에 정이 들어서일까? ‘키보우후르로 바뀐 것은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하면서 부터이다. ‘우후르의 뜻은 이곳 스와힐리어로 독립을 뜻한다.

고도 4,000m 이상에 진입해서인지 머리가 지끈대기 시작했다. 타이레놀부터 먹었다.

오후 4시에 저녁을 먹었다. 누군가 식당 한구석에 스마트폰으로 킬리만자로의 표범노래를 틀어 놨다. 조용필의 내레이션과 노래가 식당에 가득 울려 퍼졌다. 가슴 한 편이 뭉클했다.

묻지 마라 왜냐고 왜 그렇게 높은 곳까지 / 오르려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 고독한 남자의 불타는 영혼을 /

아는 이 없으면 또 어떠리.......구름인가 눈인가 저 높은 곳 킬리만자로 / 오늘도 나는가리 배낭을 메고 / 산에서 만나는 고통과 악수하며 /그대로 산이 된들 어떠리......

최 팀장은 정상등정을 앞두고 마지막 당부를 아끼지 않았다. “믿을 건 두 다리와 배낭뿐이다. 배낭 속에 따뜻한 물과 비상식을 충분히 챙겨라.”

지극히 맞는 말이다. 하지만 고산이라는 특수성에 두 다리와 배낭만 믿는다고 안 될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어떻게 고산증세를 이겨내는가이다.

오후 5, 등정에 나설 옷을 미리 차려입었다. 두꺼운 겨울셔츠 2개를 껴입고 그 위에 패딩점퍼를 입었다. 양말까지 신은 채 침낭에 들었다.

1030분 기상, 5시간 30분 동안 자는 둥 마는 둥 침낭 속에 있었다. 간단하게 눌은밥으로 요기를 하고 출발준비를 서둘렀다. 지난밤 붙인 파스 위에 무릎보호대를 착용했다. 구스다운을 겹쳐 입고 장갑과 주머니에 핫팩을 넣었다. 이제 준비는 끝났다. 정상에 오르기만 하면 된다. 

킬리만자로, Day 7.

<주요구간>

키보산장Kibo Hut 4,720m ~ 우후르피크Uhuru peak 5,895m ~ 키보산장Kibo Hut 4,720m ~ 호롬보산장Horombo Hut 3,720m

<도상거리>

키보산장 ~ 우후르피크 왕복 12.0km 키보산장 ~ 호롬보산장 10.1km 22.1km

자정, 헤드랜턴으로 길을 밝히며 정상을 향해 길을 나섰다. 선두에서 메인가이드가 대원들을 이끌고 대원 두세 명 사이마다 보조가이드가 있다. 후미에는 최 팀장이 대원들을 살피며 따라온다. 대원과 가이드, 24명이 일렬로 줄을 지어 오른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경사도 급하다. 하지만 경사가 급한 게 문제가 아니다. 시작부터 졸음이 쏟아지는 게 문제이다. 엘브러즈에 갔을 때도 졸리기는 했으나 이토록 심하지는 않았다. 몸은 주저앉을 것만 같았고 걸음은 비틀거렸다. 단순한 졸음이 아니고 뇌에 산소공급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나타난 고산증세이다.

해발 5,000m 이상은 생명한계선으로 불리는 죽음의 지대이다. 즉 어떤 생명체도 살아갈 수 없고 뇌세포가 죽어가기 시작하는 데스 존death zone이다. 신만 살 수 있는 신의 땅인 것이다. 이제 어쩌면 좋지? 어쩌면 좋단 말인가?

보조가이드가 킬리만자로의 노래를 불러줘도 졸음은 달아나지 않았다.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캐럴에 맞춰, “졸면 안 돼, 졸면 안 돼노래를 부르며 마인드컨트롤을 해봐도 소용이 없었다. 그대로 주저앉아 한숨 푹 자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도 없다. 고산에서 잠을 잔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무작정 졸음을 쫒고 가야한다. 그게 살길이다.

이를 알아차린 최 팀장이 달려왔다. 최 팀장은 내 의지를 확인하고는, 보조가이드를 불러 내 배낭을 대신 메도록 조치했다. 배낭을 대신 메어주니 몸은 가벼웠다. 하지만 쏟아지는 졸음을 쫒을 수는 없었다. 잠을 못자 졸린 것은 의지만으로 쫒을 수 있지만, 산소부족에 따른 졸음은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졸며 비틀거리며 비몽사몽간에 오름길을 이어갔다.

배낭을 맡긴 사람은 나뿐이 아니었다. 연장자인 서울 남 선생도 맡겼고 동갑내기인 진주 김 선생도, 제주 오 선생도 맡겼다. 내 배낭을 대신 메어준 보조가이드는 아구스티노 주아이다. 나이는 29살이며 미혼이다. 날렵한 몸에 펄펄 날아다닌다. 아버지와 함께 참여하여 이름 앞에 스몰을 붙여 부른다.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싸락눈이 바람에 날려 얼굴을 때렸다. 그래도 졸음은 달아나지 않았다. 6시간 만에 해발 5,685m인 길만스 포인트Gilmans point에 올라섰다. 길만스 포인트에서 바라보는 수평선 넘어 뜨는 일출광경은 아름답기로 알려져 있는데, 일출보다는 눈 내리는 풍광이 너무 아름답고 반가웠다. 꽁꽁 언 손을 비비면서도 이곳에서 만나는눈이 반갑기만 하다내리는 눈은 순식간에 온 킬리만자로를 하얗게 만들었다능선 길을 따라 순백의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정상을 향해 오르는 대원들

어느새 해발 5,756m의 스텔라 포인트Stella point에 이르렀다. 정상에 다녀오는 사람들과 간간이 마주쳤다. 그들의 옷에 내려앉은 눈이 들러붙은 채 얼어있다. 눈썹과 수염에도 눈이 얼어붙어 설인을 보는 듯했다. 현재기온은 영하 7도 정도이다. 하지만 눈바람이 매섭게 몰아치고 있다. 체감온도는 대략 영하 20도 정도 되는 듯하다. 주머니와 장갑에 핫팩을 넣었으나 손끝은 아려왔다.

드디어 정상이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오전 740분이다.

킬리만자로 우후르피크 정상에서

정상에 섰지만 어찌된 일인지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어떤 감흥도 일지 않았다. 그저 몽롱할 뿐이었다. 마치 시간이 갑자기 멈춰버린 듯했다. 절대적인 고요 속에 갇혀있는 것만 같았다. 잠시 주저앉아 눈을 감았다. 그때 한줄기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킬리만자로의 청량한 기운이 가슴깊이 스며들었다. 고개 들어 주위를 둘러봤다. 그곳은 분명 킬리만자로 정상이었다. 벌거벗은 정상의 모습만 사진으로 봤는데, 눈 덮인 정상에 선 것이었다. 그제야 온몸에 행복이 스멀스멀 솟아올라왔다. 그렇다. 행복이 거기에 있었다. Happiness is there!

문득 헤밍웨이E. M. Hemingway가 쓴 킬리만자로의 눈The snows of Kilimanjaro’에 나오는 표범이 떠올랐다. 그 표범은 왜 이리 높은 곳까지 올라왔을까? 이곳에서 무엇을 찾으려고 했을까? 목숨과 맞바꿀 만큼 소중한 것이 이곳에 있단 말인가? 그게 뭘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정상에 오르면 그 답을 꼭 찾고 싶었다. 헤밍웨이는 킬리만자로의 표범에 대하여 이같이 쓰고 있다.

킬리만자로는 19710피트의 눈 덮인 산으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고 한다. 그 산의 서쪽 정상은

마사이족의 말로 누가예 누가이로 불리는데, 이는 나님의 집이라는 뜻이다. 서쪽 정상 가까이에는 미라의 상태로 얼어붙어 있는 표범의 시체가 있다. 그런 높은 곳에서 그 표범이 무얼 찾고 있었는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이제까지 아무도 없었다.

티베트 쓰구냥산에 갔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그때 대원 한 분이 해발 4,390m 캠프에서 산소부족에 의한 고산증세로 뇌세포가 손상되면서 헛소리를 지껄였다. 그분처럼 다치지 않고 내려가기위해서는 한시바삐 하산해야만 한다. 때마침 최 팀장이 다가와 빠른 하산을 권유했다. 인증 샷 한 컷 찍고 서둘러 발길을 되돌렸다.

올라올 때는 너덜지대로 올라왔는데, 내려갈 때는 화산자갈과 흙이 쌓인 길로 내려갔다. 켜켜이 쌓여있는 화산재는 세월이 쌓여있는 듯했다. 경사가 급해 한 발 내딛으면 1 ~ 2m 쭉쭉 미끄러져 내려갔다. 썰매가 있으면 그 위에 앉아 내려가고 싶었다. 눈은 그쳤으나 내린 눈이 스며들어 먼지가 날리지 않았다. 눈이 오지 않았더라면 온몸에 먼지투성이가 될 뻔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걸어온 길들이 아득하게 펼쳐져있었다.

제주 오 선생의 아들 오 군은 이 길을 내려오다 돌에 무릎이 부딪쳤다고 한다. 오 군은 무릎이 부어올라 절룩거렸다. 결국 이튿날 호롬보산장에서 구급용 차량으로 마랑구게이트까지 내려갔다. 호롬보산장에서 구급용 차량이 다닐 수 있는 길이 별도로 있다고 한다.

키보산장에 돌아왔다. 올라갈 때 7시간 이상 걸렸던 길을 단 2시간 만에 내려왔다. 보조가이드 아구스티노 주아와 함께, 표범이 쫒아오는 것도 아닌데 걸음아 날 살려라하고, 앞만 보고 내림 길을 재촉했다. 한시바삐 고산을 벗어나야한다는 일념뿐이었다. 산장에 이르자 그제야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온몸의 혈관까지 깨끗해진 기분이다.

산장에는 연장자이신 서울 남 선생이 이미 내려와 있었다. 남 선생은 해발 5,300m 지점까지 오르고 스스로 발길을 되돌렸다고 한다. 이 분은 올해 71세이시다. 서울 모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을 하시고, 현재는 사업체를 운영하고 계신다. 수필가이며 서예가, 서각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수석과 사진도 프로급이다. 나도 남 선생처럼 일흔이 넘어서까지 고산에 오를 수 있을까? 쉽지 않을 듯하다. 중간에 발길을 되돌릴 줄 아는 용기, 그 용기만큼은 누구나 본받아야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용기가 없다. 죽을 때 죽더라도 목표를 이루고야 마는 부질없는 만용이 있을 뿐이다.

눈발은 빗물로 바뀌었다. 이곳은 건기와 우기로 뚜렷이 구분된다. 마침 건기여서 비의 양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사막지대를 촉촉이 적셔주어 먼지가 나지 않았다.

내려가는 걸음은 모두 거침없이 빨랐다. 점차 고도를 낮추므로 힘도 들지 않았다.

키보산장에서 속이 거북해 점심을 먹지 못했다. 호롬보산장까지 내려왔으나 쉽게 회복이 되지 않았다. 4,000m 아래로 내려왔는데도 입맛이 살아나질 않았다. 저녁은 눌은밥 반 공기 뜨고 수저를 내려놓았다.

침낭에 들자 피곤이 사지를 짓누르면서, 꽁꽁 얼었던 몸이 기분 좋게 사르르 녹아내렸다.

킬리만자로, Day 8.

<주요구간>

호롬보산장Horombo Hut 3,720m ~ 만다라산장Mandara Hut 2,720m ~ 마랑구게이트Marangu gate 1,879m ~ 모시Moshi

<도상거리>

호롬보산장 ~ 마랑구게이트 19.9km

이른 새벽 5시에 일어났다. 모시까지 가야하기에 갈 길이 멀다. 고도를 낮추고 잠을 푹 자서인지 몸도 마음도 한결 가뿐하다. 입맛도 살아났다.

동갑내기인 진주 김 선생은 아직도 속이 불편하다고 한다. 김 선생은 중등학교 교장으로 정년을 하셨다. 에베레스트BC와 옥룡설산에 다녀오셨다. 매일 새벽 헬스로 하루를 시작해서인지 부지런하고 건강하시다.

길을 나서기 전 작은 이벤트가 있었다. 그동안 고락을 함께했던 스텝 30여명이 모였다. 그들은 노래와 춤으로 성공적인 등정을 축하해 주며, 아쉬운 작별을 표했다. 우리 대원도 그들과 함께 박수를 치고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작별을 아쉬워했다. “아산떼, 아산떼

내려가는 길은 수월했다. 올라올 때의 길을 그대로 따라가면 되었다. ‘뽈레 뽈레’ 걸었던 길을 빨리 빨리’ 걸어 일사천리로 내려왔다올라오는 사람들과 스쳐 지날 때마다 인사를 나누었다. “잠보잠보

스텝들이 노래와 춤으로 등정 성공을 축하해주고 있다

마랑구게이트에 이르러 사실상 등반이 마무리 되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이번 등반은 힘들긴 했으나, 복 받은 등반이었다. 킬리만자로의 눈을 온몸으로 맞으며 정상에 오를 수 있었고, 눈 덮인 정상에 설 수 있었다. 또한 내려올 때 화산재구간에서 먼지를 뒤집어쓰지 않을 수 있었다. 아니, 그보다는 무탈하게 등반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행운이 따라주었기 때문이다.

마랑구게이트를 나서면서, 정상에 오를 때 배낭을 대신 메어준 아구스티노 주아에게 다가갔다.

힘들지 않은가?”

힘들지만 괜찮다.”

메인가이드 실바누스(), 보조가이드 아구스티노 주아()와 함께

쉬운 일을 찾아 해라.”

일자리가 없다.”

가슴이 뭉클했다. 그의 눈을 물끄러미 들여다봤다. 사슴같이 투명한 눈망울에 슬픔이 담겨있었다. 최 팀장을 통해 규정대로 30달러를 주었으나, 그의 손에 10달러를 쥐어주었다. 그는 엄지손을 척 세우더니 코리아 넘버 원이라며 밝게 웃었다. 잠시 생각해봤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이같이 힘든 일을 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놀면 놀았지, 거의 없을 듯하다.

내게 모자를 팔고, 내 모자를 기념으로 받은 현지인 남성과 마주쳤다. 그는 내가 준 모자를 쓰고 등반 객들에게 모자와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서로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잠보, 잠보

모시 호텔에서 바라본 하얗게 반짝이는 킬리만자로

마랑구게이트에서 모시까지는 버스로 이동했다. 모시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명칭은 호텔이지만 시설은 그저 그렇다. 오후 5시까지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았다. 국가적인 절전정책으로 나라 전체가 그렇다고 한다. 침대에는 모기장이 쳐져있었다. 황열병 예방접종을 받고 온 게 실감났다.

그러나 위치만큼은 특급이다. 킬리만자로가 한눈에 들어왔다. 킬리만자로 서면 모습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어제 온 눈으로 6부 능선까지 눈에 덮여 하얗게 반짝이고 있었다. 거기에 구름이 띠를 이뤄 산을 감싸 돌았다. 누가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이 모두 녹아 없어질 거라 했는가? 2030년이면 모두 사라질 거라고? 어림없는 말이다. 이제 그런 우려는 깨끗이 씻어졌다. 킬리만자로는 스와힐리어로 하얗게 반짝이는뜻이다. 그 뜻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킬리만자로는 영원히 하얗게 반짝일것이다.

킬리만자로는 애초에 케냐에 속해있었다.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는 케냐에 속해있던 킬리만자로를 탄자니아로 넘겨달라고 영국여왕에게 간청했다. 영국 빅토리아여왕은 자신의 외손자인 빌헬름 2세에게 생일선물로 주었다. 그로부터 킬리만자로는 탄자니아의 영토가 되었다.

국립공원에서 정상등정 인증서가 발급되었다. 인증서를 받아들고 깜짝 놀랐다. 인증서 번호Certificate No414,107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정상에 오른 사람들이 무려 40만 명을 넘어섰다니, 많은 사람들이 올랐으리라고 생각은 했으나 상상 이상이어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제 케냐 나이로비에서 폭탄테러가 일어나 1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나이로비는 모레 가야할 곳이어서 소식을 접한 대원들이 잠시 술렁였다. 휴대폰에는 여행경보 1단계를 발령했다며, 여행유의국가이므로 철수하라는 내용의 문자가 날아들었다.

6일 동안 고양이 세수만 했다. 몸에서, 머리에서 땀 냄새가 진동하는 것 같았다. 전기가 들어오자마자 샤워부터 했다. 잠자기 전 또 샤워를 했다. 지금 이 시간 유일하게 하고 싶은 것은 뜨거운 물을 받아놓고 몸을 푹 담그는 것이다. 그러나 욕조시설은 없다.

방안에는 30촉 백열전구 2개가 천장에 붙은 채 졸고 있다. 헤드랜턴을 켜고 탁자 앞에 앉아 떠오르는 단상들을 대충 정리하고 책을 꺼내들었다.

킬리만자로, Day 9, 10, 11, 12.

<주요구간>

모시Moshi ~ 타라케아 국경Tarakea Border ~ 케냐 암보셀리국립공원Kenya Amboseli National Park ~ 케냐 나이로비국제공항Kenya Nairobi International Airport ~ 에티오피아 볼레국제공항Ethiopia Bole International Airport ~ 인천국제공항Incheon International Airport

오늘부터 귀국 시까지는 버스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일뿐이다.

아홉 번째 날은 탄자니아 모시에서 타라케아 국경으로 이동하여 케냐로 육로 입국했다. 타라케아 국경에는 전자시설이 없어, 짐을 모두 풀어 일일이 육안으로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다. 암보셀리 국립공원으로 이동하여 호텔에 여장을 풀고, 한차례 사파리 탐방을 했다. 이곳에도 침대마다 모기장이 쳐있고, 오후 5시 이후에야 전기가 들어왔다. 다행히 음식 맛은 지금까지 중 최고이다.

열 번째 날은 새벽 사파리 탐방을 하고, 나이로비로 이동하여 하룻밤을 보냈다.

열한 번째 날은 나이로비공항에서 비행기로 아디스아바바 볼레국제공항으로 날아가, 환승하여 인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나이로비공항은 케냐의 총리와 대통령을 지낸 조모 케냐타의 이름을 따 조모 케냐타공항으로 불린다.

밤새 어둠 속을 날아, 열두 번째 날에 인천공항에 이르렀다. 면도도 하지 못해 흰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라 완전 할아버지 모습이다. 짧은 일정에는 면도기를 가지고 다니지만 열흘 이상은 충전문제로 가지고 다닐 수도 없다. 손자는 수염이 자란 할아버지를 영상으로 보고 할아버지가 산타할아버지 같아요.”라며 싱글벙글대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주면 먹고 졸리면 잤다. 틈틈이 못다 읽은 책도 펼쳐들었다. 반딧불이 중 단편 세 가지의 독일 환상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었다.

정말로 아무 것도 없었다. 안개의 바다 속에 공중정원이 외롭게 떠 있을 뿐이었다. 공중정원이라는 것만 빼

면 여느 평범한 정원과 하등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나는 특별히 실망한 건 아니었다. 나는 훌륭한 정자며

분수며 동물 모양 나무의 큐피드조각상을 기대하고 여기에 온 것이 아니었다. 그저 공중정원이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킬리만자로 정상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사라져갔다.

눈만 감으면 떠오르는 신들의 땅 킬리만자로, 벌써 그곳이 그립다.

잠보, 잠보. 킬리만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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