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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인 황대연] 동양의 알프스 쓰구냥 <完>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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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04 10:59

동양의 알프스

쓰구냥산四姑娘山

 

산악인 황대연

 

등반일자 : 2017. 11. 16 ~ 11. 21.

쓰구냥산, Day 4

<주요구간>

노우원자로영점(캠프)老牛園子露營点 3,687m ~ 과도영鍋途嶸 4,379m ~ 과도영로영점(캠프)鍋途嶸露營点 4,390m

<도상거리> 6km


지난밤 잠을 자다 추위와 갈증으로 잠에서 깼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밤 230분이다. 보온병을 열어보니 따뜻한 물은 이미 다 마셔 텅 비어있다. 설상가상으로 페트병에 있던 물은 얼어있다. 손으로 두드려 얼음을 깨고 갈증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얼음물을 마시고보니 더 추웠다. 핫팩을 추가로 침낭 속에 넣고 두툼한 오리털파카를 꺼내 입었다.

소변도 볼 겸 잠시 밖으로 나왔다. 베이스캠프의 밤은 아주 고요했고 하얗다. 그야말로 순백의 세상이다. 눈이 내려 하얀 것이 아니라 서리가 내려 하얗다. 초원에도, 캠프에도 서리가 두껍게 내려앉아 있다. 내려앉은 서리는 얼어있다. 발에 밟히는 대로 서걱서걱 소리를 내는 것이 고요 속에 잠들어있는 캠프를 흔들어 깨우는 듯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 , 별들이 하늘에 꽉 차 있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하고 우수수 떨어질 것만 같았다. 별이 이토록 많은지 처음 느껴 보았다. 한참을 바라보았다. 티 없이 맑은 밤하늘에 펼쳐진 별들의 군무, 하늘도 돌고 별도 돌고 나도 덩달아 돌아가는 것만 같았다. 윤동주 시인의 시 별 헤는 밤이 떠올랐다.

 

별 헤는 밤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

 

오늘은 과도영까지 6km를 이동하고 고도는 703m 올려준다. 과도영에 이르면 비부아크bivouac를 하기위해 제2 베이스캠프를 설치한다.

아침식사 메뉴는 미역국에 도라지무침, 더덕무침, 버섯조림, 김치이다. 고산증이 시작되었는지 식사량이 절반으로 줄었다. 밥 반 공기를 억지로 먹었다. 속이 편치 않아 더 이상 먹을 수가 없다. 짐 나르는 말은 바닥에 납작하게 깔려있는 마른 풀을 뜯고 있다. 서리가 내려앉아 아직 마르지 않았는데도 맛있게 뜯고 있다.

오전 10, 짐을 정리하고 길을 나섰다. 출발이 늦은 것은 거리가 짧고, 일찍 올라가봐야 그만큼 고산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이다. 오름길을 올라 노우원자 갈림길에 이르고 야크 방목장을 지나며 천천히 오름길을 이어간다.

저만치 발아래 낮게 포복한 나무 사이에서 무엇인가 빠르게 움직였다. 산토끼이다. 동물이라고는 야크와 말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산토끼가 있다. 이곳에는 멧돼지와 승냥이도 있다고 한다.

능선에 올라섰다. 능선에는 갈림길이 있고 갈림길 좌측 내림 길은 하산 시 대첨포로 내려가는 길이다. 잠시앉아 점심을 먹었다. 점심은 행동 식으로 아침에 나눠준 주먹밥이다. 주먹밥을 베어 물었으나 삼켜지지가 않았다. 겨우 반을 먹었다. 아침에 속이 편치 않아 소화제를 먹었으나 지금까지 속이 가라앉지가 않는다. 해발 4,000m전후에서는 소화제로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알면서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정 선생과 윤 선생이 오르다 쉬다 오르기를 거듭하고 있다. 그들이 힘든듯하여 잠시나마 웃으라고 말을 건네었다.

아이는 있느냐?”

아직 없다.”

내일모레면 사십인데 아이 갖는 걸 미루지 마라.”

조만간 가질 계획이다.”

만약 아이가 생기면 이곳에 온 기념으로 쓰구냥이나 따구냥으로 이름을 지어라.”

하하하, 좋은 생각이다.”


따구냥봉 능선

해발 4,208m 지점에 오르니 , 이봉 보호참차로구, 二峰 保護站岔路口안내판이 서있다. 풀이하면 대봉과 이봉 즉 따구냥봉과 얼구냥봉으로 가는 갈림길이다. 눈앞에는 따구냥봉 능선이 가로막고 있다.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없이 전체가 바위능선이다.

바위능선은 우리나라 바위능선하고는 확연히 다르다. 매끄럽고 단단한 바위가 아니고 톱날같이 날카롭고 뾰족뾰족하다. 암석의 풍화된 모습이 날카로운 바위 절단면처럼 허공을 찌르고 있다. 날카롭게 뻗은 단애가 뿜어내는 정기가 온몸을 타고 들어오는 듯하다. 능선에서부터 흘러내린 바위조각들은 산사태를 만나 휩쓸려 내려온 것 같다. 주변은 야크의 먹이가 되는 키 작은 나무만 듬성듬성 있을 뿐이다. 양지바른 곳에는 야크 떼들이 풀을 뜯거나 앉아 쉬고 있다개중에는 눈을 껌벅이며 우리 일행을 바라보기도 한다참으로 평화로운 풍경이다.


야크들이 풀을 뜯고 있는 모습

과도영에 이르렀다. 과도영의 고도는 해발 4,379m이다. 그곳엔 자그마한 건물이 있고 건물 앞에는 대봉보호참大峰保護站안내판이 서있다. 대봉이란 우리가 오를 따구냥봉을 말한다. 그곳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공터에서 쓰레기를 태우고 있다. 슬그머니 옆으로 다가가 곁불을 쬐었다.

조각조각 부셔져 흘러내린 바위조각들이 너덜을 이루고 있다. 납작한 바위조각들을 보니 삼겹살이라도 구워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인다. 너덜지대를 잠시 올라 캠프 설치할 곳에 이른다.

2 베이스캠프를 설치할 곳은 과도영을 조금 지난 바위 능선 아래 너덜지대이다그곳 자그마한 공터에는 돌을 쌓아 만든 화장실과 취사를 할 수 있는 돌집이 있다취사텐트는 설치하지 않아도 되어서 텐트 3동만 설치했다화장실은 높이가 낮은 나무칸막이가 있어 앉으면 옆 칸과 차단이 된다.


2 베이스캠프

오후 4, 이른 저녁을 먹고 오후 530분에 일찌감치 침낭 속에 들었다. 내일 새벽 330분에 일어나 4시에 정상을 향해 가야하기 때문이다. 저녁식사는 김치찌개, 호박조림, 오징어젓갈, 깻잎장아찌, 김치이다. 그러나 먹을 수가 없다. 딱 밥 한 스푼과 국물 세 스푼을 뜨고 수저를 놓았다. 부부 중 정 선생은 한 그릇 다 비웠으나 윤 선생은 나오지 조차 않았다. 그분도 나처럼 속이 편치 않은가보다. 머리도 지끈지끈 아프다. 에베레스트에서도 4,000m 이상에서 똑같은 증세로 고생을 했었다.

캠프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해가 뉘엿뉘엿 지면서 어둠의 그림자가 내리고 대기는 찬 기운을 품는다. 남은 핫팩을 침낭 속에 모두 넣고 옷에도 핫팩을 군데군데 붙였다. 물티슈로 손, , 얼굴만 대충 닦고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침낭 속에 들었다.


쓰구냥산, Day 5


<주요구간>

과도영로영점(캠프)鍋途嶸露營点 4,390m ~ 따구냥봉大姑娘峰 5,038m ~ 과도영로영점(캠프)鍋途嶸露營点 4,390m ~ 계잡평鷄卡坪 4,080m ~ 대첨포打尖包 3,750m ~ 석판열石板熱 3,668m ~ 조산평朝山坪 3,633m ~ 과장평鍋莊坪 3,554m ~ 일륭日隆 3,200m ~ 성도成都

<도상거리>

과도영캠프 ~ 따구냥봉 ~ 일륭, 15.5km

일륭 ~ 성도, 차량이동

 

이른 새벽 330, 산악가이드가 잠을 깨운다. 일어나보니 주위가 어수선하다. 지난밤 부부 중 남편인 정 선생이 고산증이 와서 헛소리를 한다고 한다. 나만 모르고 있었다. 수면제를 먹고 잤기 때문이다.

가이드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 채 코를 골며 자기에 피곤해서 그런 줄만 알았다고 하며, 수면제를 먹는 줄 알았으면 못 먹게 했을 것이라 한다. 고산에서 수면제를 먹고 자다가 아침에 죽은 채 발견된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듣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가이드는 날이 밝는 대로 부부를 데리고 하산해야 한다며 길을 아는 마부와 함께 정상에 오르라고 한다.

마부가 끓여준 흰죽 한 그릇을 훌훌 마셨다. 주위는 어둠에 잠겨있다. 헤드랜턴으로 길을 밝히며 길을 나섰다. 길고 삭막한 너덜 오름길이 주능선 안부까지 이어져있다. 해발 4,700m 지점에 이르니 눈이 쌓여있다. 너덜에 쌓여있는 눈은 딱딱하게 얼어붙어 스틱이 꽂이지도 않고 미끄럽다. 아이젠을 착용하고 가다 쉬기를 거듭한다. 호흡이 거칠어질 때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올라간다. 내가 힘들어 잠시 멈추면 앞서가던 마부도 나의 페이스에 맞춰 기다려준다. 힘겹게 주능선 안부에 오르고 정상을 향해 걸음을 재촉한다. 바람이 거세었다. 두툼한 오리털파카를 입고 털모자를 쓰고 장갑을 두 개나 겹쳐 끼고 장갑 속에는 핫팩을 넣었는데도 찬바람이 온몸에 스멀스멀 스며들었다. 하늘이 가까워질수록 겨울이 깊어가는 듯하다.

앞서가던 마부가 야호~”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닌가. 드디어 쓰구냥산 따구냥봉 정상이다. 정상에는 돌을 쌓아놓고 그 위에 타르쵸가 얼기설기 매어져 바람에 날리고 있다. 정상을 알리는 나무판에는 四姑大峰 5,025’라고 쓰여 있다. 그러나 정상의 실제 높이는 5,038m로 알려져 있다.

정상에 올랐으나 기다리는 것은 어둠과 추위와 바람뿐이다. 정상, 그곳은 고요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거센 바람소리조차 내 귀엔 들리지 않았다. 전설속의 아름다운 따구냥을 만날 생각으로 설레던 가슴도 고요 속에 빠져들었다. 버티고 극복하고 올라온 내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낄 뿐이다.

스마트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해보니 새벽 6시 정각이다. 사진을 찍으려고 장갑을 벗었다. 장갑을 벗자마자 손이 얼었는지 감각조차 없다. 스마트폰을 쥐고 있는 느낌조차 없다.

쓰구냥산 따구냥봉 정상 

스마트폰을 두 번이나 바닥에 떨어뜨렸다. 지금 이글을 쓰는 이 시간까지 손끝이 찌릿찌릿하다. 우여곡절 끝에 플래시를 작동시켜 정상모습 한 컷을 겨우 담았다. 이어 정상을 배경으로 나의 모습을 담기위해 마부를 불렀다. 마부에게 스마트폰을 건네려니 스마트폰이 그대로 꺼졌다. 출발 전 배터리 잔량이 60퍼센트 남아있음을 확인하고 올라왔다. 문제는 강추위이다. 온도계가 없어 정확한 기온은 확인할 수 없으나 체감기온은 영하 20도를 훌쩍 넘는 것 같았다. 스마트폰이 강추위에 노출되면 순간적으로 배터리 잔량이 제로가 된다는 것을 미처 생각지 못했다. 전에도 이 같은 일이 딱 한번 있었다. 그때는 백두대간을 종주 중일 때였으며 일행들이 있어서 일행이 사진을 찍어주었었다. 난감했다. 정상등정에는 성공하였으나 정상에 선 나의 모습조차 담을 수 없다니, 허망했다. 내가 만약 에베레스트 정상 등정을 했다면 등정시비에 휘말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일출시간이 730분이므로 그때까지 기다리려면 1시간 30분을 기다려야만 한다. 추위에 떨며 기다렸다가 눈으로, 가슴으로 담을 것인가 아니면 하산할 것인가 선택의 기로였다. 십여 분 기다려보았으나 더 머무를 작은 여유조차 사라져 갔다. 하산을 결정했다. 마부에게 , 고우 베이스캠프 back, go base camp"라고 소리쳤다. 마부는 추위에 떨며 일출 때까지 기다릴 것을 걱정했는지, 돌아가자는 나의 말을 알아듣고 금세 미소가 번졌다.

내림 길에 들었다. 언제 또 올 수 있을까하는 아쉬움과 미련에 정상을 돌아보고 또 돌아보았다. 안부쯤 내려왔을 때 두 팀이 오르고 있다. 이들은 일출시간에 맞춰 정상에 설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시간을 맞추지 못해 허망하게 내려오는 길이다. 베이스캠프에서 정상까지는 3km이다. 산악가이드는 정상까지 3시간 30분을 잡고 새벽 4시에 내가 출발하도록 했다. 그러나 나는 단독등정이다. 마부는 길잡이 역할만 할 뿐 단독등정이다 보니 거칠 것이 없었다. 내 페이스대로 오르면 되었기에 2시간 만에 정상에 선 것이다. 시간계산을 제대로 못한 가이드와 시간조절을 못한 나 자신으로 어둠속에서 정상에 오르고 내려와야만 했다. 하산 길은 순조로웠다. 1시간 2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캠프에 이르자 어둠이 물러가고 있다. 부부와 가이드가 출발하려는 듯 캠프밖에 나와 있다. 잠시 몸을 추스르고 있는 사이에 어느새 부부와 가이드가 보이지 않았다. 어쩌다보니 부부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정 선생은 젊고 건장한 체격으로 어제 저녁까지 유일하게 식사도 잘하였다. 그런 그가 고산증세로 정상을 코앞에 두고 하산해야만 해서 더욱 안쓰럽고 걱정이 되었다.

라면을 끓여 내왔으나 반의 반 밖에 먹지 못했다. 거북한 속이 아직도 풀리지 않았다. 내가 남긴 음식물 찌꺼기는 모두 말의 먹이가 되었다. 마부가 넓은 돌 위에 음식물을 쏟아놓자 기다렸다는 듯 말이 다가와 남김없이 먹었다. 긴 혀로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돌을 핥았다. 나는 말이 사료나 풀만 먹는 줄 알았는데 이같이 음식물까지 잘 먹는 줄은 이제야 알았다.

마부의 뒤를 따라 하산 길에 들었다. 마부 한 명이 앞에서 인도하고 다른 마부 한 명은 뒤에서 말들이 옆으로 새지 못하도록 몰아간다. 말들이 조금이라도 늑장부리거나 옆으로 새려고 하면 ~”, “~", “~” 라고 큰소리로 말들을 통제한다.

노우원자 갈림길을 지나고 계잡평을 지나간다. 요소요소마다 안내판이 서있다. 혼자 가도 길 잃을 염려는 없을 것 같다. 이곳은 우기와 건기가 뚜렷하다. 지금은 건기다. 땅이 메말라 말이 가는대로 먼지가 일었다. 먼지를 피해 거리를 두거나 재빨리 먼지 반대방향으로 피해간다. 관목지대를 지나고 초원지대를 지나며 산허리 길을 이어간다.

대첨포에 이르러 잠시 쉬어간다. 이제야 시장기가 돌았다. 4,000m 아래로 내려오니 모든 신체기능이 정상이 된 듯하다. 사과 한 입 베어 물었다. 올라올 때 보이던 큰 개는 보이지 않고 강아지가 다가와 배낭끈을 물고 장난을 친다. 귀여운 모습에 소시지를 꺼내어 조금씩 잘라주니 덥석덥석 잘 받아먹었다어느새 고양이가 다가와 강아지의 얼굴을 앞발로 때렸다강아지와 고양이에게 공평하게 한 조각씩 떼어주었다.

안내판


대첨포 관리소

어느새 라마불교 탑을 지나간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 두 손 모아 예를 표하고 나아간다. “무탈하게 마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옴마니 반메훔.” 과장평을 지나 재계평 직전에서 우측 내림 길로 들었다. 일륭마을로 가는 지름길이다. 경사는 급하고 울퉁불퉁한데도 짐을 짊어진 말들은 잘도 간다.

오후 120, 등반이 종료되었다. 과도영 캠프에서 하산을 시작한지 3시간 10분 만이다. 말과 마부의 걸음걸이가 무척 빠르다. 고산에서 단련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뒤를 졸졸 따라왔을 뿐이다. 마부는 우리가 묵고 있던 산장 앞에 짐을 내리고 말을 데리고 떠났다.

숨도 고르기 전에 가이드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정 선생이 현재 마을 병원에 있으며 고도를 낮출 겸 성도 큰 병원으로 가야한다고 한다. 가이드를 따라 마을 병원에 갔다. 마침 산소 호흡기를 쓴 정 선생이 앰뷸런스로 옮겨 타고 있었다. 성도병원으로 출발하는 것을 지켜보고 산장으로 돌아왔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하산 중에 정 선생의 발이 풀려 자꾸 넘어지려해 뒤에서 옷을 움켜잡기도 하고 윤선생과 가이드가 양팔을 잡고 부축하며 힘들게 내려왔다고 한다.

잠시 후 현지 여행사 대표로부터 전화가 왔다. 산장에 혼자 있지 말고 성도로 내려오라고 한다. 애초에는 이곳 산장에서 마지막 숙박을 하기로 되어있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정을 바꿀 수밖에 없다. 손도 닦지 못한 채 짐을 꾸려 산장지배인 승용차로 성도를 향하여 길을 나섰다.

파랑산 터널을 통과하자 자욱한 안개가 앞을 가로막는다. 안개가 피어오르는 풍경은 동화속의 풍경인 듯 아름답다. 안개가 걷히자 주변이 보이기 시작한다. 온 산이 온통 하얗다. 눈이 왔다고 한다. 5부 능선까지는 하얗고 그 아래는 울긋불긋 단풍이다. 색색갈의 단풍위로 하얀 눈꽃이 어우러진 모습은 신비롭고 황홀하다. 가을과 겨울의 색이 교차하고 있다. 하나의 산에 가을과 겨울이 공존하고 있다. 낙엽이 채 다 떨어지기 전에 겨울은 산위에서 서서히 내려오고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을 오래 기억하기위해 두 눈에, 가슴에 깊이 담았다.

이곳의 산은 모두 우뚝우뚝 서있다. 경사도 급하고 험준하다. 우리나라의 산처럼 앉아있거나 누워있는 산은 보이지 않았다. 이곳 사천성에만 해발 4,000m 이상의 산이 145개나 된다고 한다.

산장지배인의 운전솜씨는 탁월하다. 무분별하게 추월하지도 않는다. 추월할 수 있는 곳에서만 추월한다. 올라올 때와는 천지차이이다. 성도에 오기까지 3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빨리 왔는데도 빨리 온 것 같지 않은 안정감이 있다. 성도에 이르기까지 3시간동안 지배인과 단 두 마디를 나누었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서이다. 그가 먼저 유 토일렛 you toilet"라고 묻기에 no”라고 답했다. 한참을 가더니 또 그가 먼저 아이 토일렛 I toilet"라고 하기에 예스 yes"라고 답했을 뿐이다. 이곳 길가에 있는 화장실은 대부분 유료이다. 사용료로 1위안, 한화 약 170원을 받는다. 말은 통하지 않았으나 소통할 수는 있었고 그가 음악을 틀어준 덕분에 서먹함을 달랠 수 있었다.

해외에서 현지사람들과 접촉할 때 가장 아쉬운 점은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없다는 점이다. 학창시절 수 년 동안 영어공부를 했지만 모두 무용지물이 되어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는 점이 아쉽고 또 아쉬운 점이다.

성도병원에 이르자 마침 정 선생이 진료를 마친 상태였다. 몇 가지 사진을 찍어보았다고 한다. 상태가 어떠한지 걱정되었다.

진료결과는 어떠한가?”

뇌 두 곳에 흔적이 나타나있다. 자연 회복될지는 정밀검사를 받아봐야 한다. 귀국 즉시 병원에 가보라고 한다.”

윤 선생은 아직도 남편이 헛소리를 한다며 걱정한다. 헛소리를 한다는 것은 고산증에 의한 뇌부종일 확률이 크다. 일반적인 고산증세는 두통, 식욕부진, 구토, 어지러움, 피로감, 호흡곤란, 무기력증, 수면장애 등이지만 이는 4,000m 이상에서 60~70퍼센트가 발생하는 증세이다. 그러나 만약 뇌부종이라면 의식상태의 변화와 조화운동불능 증세가 온다. 내가 보기에는 심한 상태는 아닌 것으로 보이고 본인도 많이 좋아진 듯 하다고하여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현지여행사대표의 주선으로 양광호텔陽光酒店에 여장을 풀었다. 그곳에는 먼저 하산한 김 선생도 있었다. 김 선생은 하산할 때와는 다르게 얼굴도 밝고 건강한 모습이다. 그동안 사천성 일대를 두루 다니며 관광으로 소일했다고 한다.

휴대폰과 수첩을 분실했다. 휴대폰과 수첩을 분실했다는 것은 나에게는 이번 등반 모두를 잃은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부랴부랴 현지여행사대표와 가이드를 불렀다. 함께 저녁을 먹은 식당에 가서 찾아보고 산장지배인에게 전화를 하여 차내를 샅샅이 찾아보게 했으나 없었다. 마지막으로 방에 돌아와 가방과 배낭을 쏟아놓고 찾아보았으나 그 어디에도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던 가이드가 갑자기 , 저건 뭐죠?” 라고 소리친다. 휴대폰과 수첩은 방 탁자위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찾았다는 안도감과 소동을 일으킨 미안함이 겹쳐 일었다. 치매전조증상인지 건망증인지 알 수는 없으나 걱정이 된다.

마지막 밤이다. 잠을 푹 자기위해 수면제를 먹었다. 수면제를 먹으면 잠은 잘 오는데 코를 곤다고 한다. 또 하나의 걱정거리만 늘었다.


쓰구냥산, Day 6

 

<주요구간>

중국성도국제공항 ~ 인천국제공항


양광호텔에서의 아침식사는 구내식당에서 하였다. 명칭은 호텔이나 우리나라 모텔 급 정도이다. 식당 한쪽 구석에 식탁과 의자 몇 개만 있을 뿐이다. 식사하는 사람도 없고 썰렁하다. 몇 가지 반찬이 있으나 입에 맞지 않았다. 죽과 앙꼬 없는 찐빵과 계란만 먹었다. 이곳에서 숙박하며 관광을 한 김 선생도 딱 한번 먹고 그 뒤로는 밖에 나가 사먹었다고 한다.

짐을 정리하여 성도공항으로 이동하였다. 점심식사는 공항근처 한식집에서 했다. 간판을 보니 중국어간판 한쪽 구석에 한글로 마포 고기 집이라고 쓰인 글이 보였다. 이곳에서 한글로 쓰인 간판을 보니 반가웠고 이미 귀국한 것만 같았다. 메뉴는 된장찌개이다. 음식 맛이 국내에서 먹는 것과 똑같다. 아니 이렇게 맛있게 만드는 음식점은 국내에서도 드물다. 만약 이 음식점이 국내에 있다면 벌써 단골이 되었을 것이다. 종업원 가운데 우리말을 하는 여성이 있기에 물으니 교포 3세라고 한다.

이곳에서의 점심식사는 모처럼 일행 모두 모인 마지막 식사 자리이다. 가이드는 한국인과 일본인이 다른 점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일본인은 많은 인원이 와도 질서정연하고 선두와 후미의 차이가 없다. 그러나 한국인은 선두와 후미의 차이가 상당히 난다. 둘째는 일본인은 한국인보다 하루정도 일정이 길다. 그러므로 일본인은 고산적응을 여유 있게 하므로 정상등반의 성공확률이 높다. 그러나 한국인은 일정도 빠듯하고 모든 것을 빨리빨리 하기 때문에 그만큼 정상등반의 성공확률이 낮다.”

아산 사는 김 선생의 말이 이어졌다.

등반을 하기위해 이곳에 와서 역사탐방, 문화탐방, 관광탐방만 했다. 성도에서 지하철을 타고 이곳저곳을 다녀봤다. 귀국하면 헬스장이라도 다녀 체력을 회복해야겠다.”

이어 일산 사는 윤 선생이 말을 이어갔다.

남편은 기가 약하다. 키나발루에 갔을 때 남편은 산장에서 귀신을 보았다. 기가 약해 이렇게 된 것 같다.”

끝으로 나도 한마디 했다.

모두들 수고 많으셨다. 김 선생은 같은 세대여서 좋았고 정 선생과 윤 선생은 세대가 달라서인지 꼭 아들과 며느리를 보는 것 같아 좋았다. 아쉬운 점은 많겠지만 큰 사고 없다는 데에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하자. 이제 고산을 벗어났으니 며칠 지나면 좋아질 것이다. 빠른 회복 기대한다.”

이글을 쓰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정 선생의 안부를 확인하지 않고는 이 글을 마무리할 수 없었다. 혜초트레킹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다. 다행이 많이 좋아졌으며 며칠 전부터 회사에 정상출근하고 있다고 한다. 그만한 게 천만다행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글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가이드를 따로 불렀다. 주머니를 확인해보니 111위안이 남아있다. 한화로 약 19,000원 정도이다. 얼마 안 되는 금액이지만 모두 가이드에게 주었다. 이곳에 올 때 환전을 많이 할 필요가 없었다. 관광일정도 없고 쇼핑일정도 없이 바로 공항에서 산으로, 산에서 공항으로 이동하는 일정이기 때문이다. 5만원을 환전해 와서 야크육포 한 봉지 사고 손자 장난감 하나 샀다. 그리고 남은 돈이다.

성도공항을 이륙한 사천항공은 3시간 30여분을 비행하여 인천공항에 안착하였다. 갈 때보다 30여분 빠르다. 귀국 비행기 내에서 자문자답해보았다.

왜 이토록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고산에 오르는 것인가?”

천신만고 끝에 정상에 올라 느끼는 벅찬 쾌감과 성취감, 그리고 그곳에 행복이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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